Opinion :서경호의 시선

거꾸로 가는 지방교육재정

중앙일보

입력 2021.12.0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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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초·중·고 학생은 줄어드는데 교육 예산은 늘어만 간다. 내국세에서 일부(현재는 20.79%)를 떼어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으로 무조건 나눠주는 제도 탓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의 1인당 연간 교육비가 대학생보다 많다. 내국세의 일부를 고정된 법정 비율로 교육교부금에 떼어주는 나라는 세계 주요국 중에 한국뿐이다. 선진국과 거꾸로 가는 ‘K지방교육재정’이다.

10여년 전, 경제부처를 담당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예산 관료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애들 교육만큼은 잘 시켜보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제도지만 갈수록 경직성 예산이 됐다. 몇 년 전 박근혜 정부 때는 교육보조금 일부를 3~5세 무상보육인 누리과정에 투입했지만 결국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대립하고 갈등하며 곤욕을 치렀다. 기형적인 제도를 수술하는 대신, 땜질 처방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학생수 주는데 교부금은 늘어
교육현장 예산낭비 점입가경
대수술 필요한데 의사는 없어

하염없이 세월이 흘렀건만 달라진 게 없다. 아니, 더 심각해졌다. 전국 6~17세 학령인구는 2000년 811만 명에서 2010년 735만 명, 지난해 546만 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교육교부금은 2000년 11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53조5000억원으로 다섯 배 가까이 커졌다. 세수가 늘면서 올해 교육교부금은 60조원이었고, 내년엔 64조원으로 늘어난다. 최근 한 신문은 국가재정운용계획지원단 분석을 인용해 현 제도가 유지될 경우 교육교부금은 2030년 80조원, 2040년 106조원으로 급증하고, 과다 지급되는 교육교부금은 올해 5조원에서 2030년 2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와중에 교육부는 내년 학교경비를 2조원 늘렸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일부 직원의 퇴직수당 등을 재정수요 항목에 추가하고 주요 항목의 단가도 올려 비용을 늘린 거다. 일선 학교와 교육청은 넘쳐나는 교육예산을 소진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교육부는 올해 코로나 교육회복지원사업비 명목으로 2525억원을 편성했는데, 일부 교육청은 이걸 학부모에게 현금으로 뿌렸다.

물론 교육은 미래 세대를 키우기 위해 국가가 마땅히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사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좌절하지 않도록 교육 기회의 형평성도 신경 써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자녀의 수능 성적과 대학 입시를 좌우하고 나아가 그들의 평생을 좌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AI) 시대와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제대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한데 교육청이 남는 예산을 주체하지 못해 퇴직수당 등 학교경비를 늘리거나 학부모에게 현금을 뿌려 ‘현금 포퓰리즘’ 논란까지 부르는 세태는 뭔가 잘못됐다.

해법은 없을까. 경제성장률이나 학령인구를 반영해 교육교부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교육 현장의 예산 낭비는 줄일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과 일반 지방재정을 통합하는 것도 다수의 전문가가 내놓은 대안이다. 학령인구는 줄지만 노인 인구는 늘어난다. 지방교육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넉넉해지지만 지방재정에서 노인 복지를 위해 쓸 돈은 부족해진다. 둘을 합치면 더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쉽지가 않다. 교부금의 법정 비율을 법률에 명토 박아 두고 있어서다. 법을 고쳐야 하는데, 표심(票心)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국회가 여간해선 움직이지 않는다.

기획재정부의 한 전직 장관은 교육교부금 대수술은 필요하지만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고 했다. 첫째, 교육 예산을 무슨 성역처럼 바라보는 그릇된 신화가 있다. 교부금 비율을 낮추면 교육 예산이 줄어 국민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고 걱정한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더 필요한 곳에 쓰겠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둘째, 교부금을 지키려는 강력한 이익집단이 교육계에 똘똘 뭉쳐 있다. 전직 장관은 “잘 조직된 소수를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이기기는 힘들다”며 “현직에 있을 때도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정책 목표로 삼아 해결하려는 시도조차 못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권 초기에 100대 국정과제에 올려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여야 합의를 끌어내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풀기 힘든 난제”라고 했다.

예산실장을 지낸 전직 관료는 더 우울한 얘기를 했다. “교육교부금 문제는 우리가 오랫동안 눈감아온 불편한 진실이지만 교육감을 선거로 뽑는 이런 이상한 나라에선 해법이 없다. 곪아 터질 때까지 가야 해결될 거다. (지방재정이) 죽을 때가 돼야 바뀐다. 그 시점이 멀지 않았다.”

모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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