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안녕, 찌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페어런츠팀장

김현예 페어런츠팀장

수업시간 공책에 그림을 자주 그리던 남학생은 꿈이 많았다. 화가가 되고 싶어 그림을 배웠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공군사관학교에 낙방하고, 공군에 자원입대해 비행기만 실컷 봤다. 제대 후, 먹고살 거리를 고민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만화. 집에서 독학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의 글에 따르면 그림을 그리다 틀리면 수정액으로 지우면 되는데, 그 수정액을 쓸 줄 몰라 처음부터 다시 만화를 그렸다. 만화가 신문수의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신문엔 독자만화 투고가 가능했는데, 20대 청년이던 그 역시 만화를 그려 보냈다. 이렇게 눈에 띈 그는 ‘도깨비 감투’(1972년)로 주목을 받는다. 1979년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에 새 만화를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로봇찌빠’. “미국의 어떤 로봇 제작회사에서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다는구나.” 설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빠가 펼쳐 든 신문에 등장한 도망친 로봇. 무려 미국에서 태어난 그 로봇이 한국에 있는 팔팔이네 집에 등장한다. 똑똑한 로봇이면 좋으련만,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로봇 이름은 찌빠. 늘어나는 긴 팔, 코는 돼지코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 코는 특히나 만능이었다. 미사일도 쏘고 영상도 보여줬다. 아이들이 그렇듯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며 찌빠는 팔팔이와 우정을 나눈다.

‘로봇찌빠’는 1980~90년대 아이들의 친구였다. 십수년간 연재가 이어지며 아이들을 위한 일상의 웃음을 대변하는 ‘명랑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대표작이 됐다. 2010년대엔 TV 만화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년중앙’에 실리고 난 원고를 받아다 1편부터 모아왔을 정도로 신문수 화백은 찌빠에 대한 애정이 컸다.

찌빠를 그린 한국 만화의 대부, 신문수 화백이 82세 나이로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찌빠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돼 부모의 자리에 섰다. 명랑만화가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손엔 이제 수학이니, 영어니, 한자니 ‘학습’이란 이름을 단 만화책과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이 들어서 있다. 세월은 변했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아이들을 위해 그가 그려온 찌빠 이야기는 우리에게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