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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엔 있다, 신화를 들이대야 납득되는 풍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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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터키도 그리스 신화의 무대다. 터키 남부 안탈리아 지역이 그리스 제국에 속했다. 사진은 해발 1800m 산꼭대기에 숨은 고대 도시 테르메소스의 원형 극장. 4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단다.

터키도 그리스 신화의 무대다. 터키 남부 안탈리아 지역이 그리스 제국에 속했다. 사진은 해발 1800m 산꼭대기에 숨은 고대 도시 테르메소스의 원형 극장. 4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단다.

리키아(Lyc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대 국가다. BC 1250년께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 안탈리아(Antalya) 지방에서 일어났다.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는 현재 터키가 들어선 아나톨리아 반도 지중해 연안 지역까지 아울렀다. 그 유명한 트로이도 지금의 터키에 있다.

리키아의 옛 도시를 잇는 트레일이 리키안 웨이(The Lycian Way)다. 페티예에서 안탈리아시까지 약 509㎞ 길이로,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대 트레일이다. 2018년 한국의 제주올레와 우정의 길 협약도 맺었다. 11월 중순 리키안 웨이의 주요 코스를 걸었다. 신종 바이러스 오미크론이 발견되기 전이다. 자칫 해외여행이 다시 닫힐지 모를 요즘이어서 조심스럽다. 하나 누천년을 내려온 길이니 코로나 사태가 잦아든 뒤에도 예의 그 모습일 테다.

꺼지지 않는 불꽃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메라(Chimera)를 아시는지. 머리는 사자, 몸은 염소, 꼬리는 뱀의 형상을 한 괴물이다. 입에서 불을 뿜는다. 영웅 벨로로폰이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타고 키메라를 무찔렀다. 작은 마을 츠랄르(Cirali) 뒷산에 키메라 전설이 내려온다. 수천년간 꺼지지 않았다는 불꽃이 산기슭 바위틈에서 올라온다. 이 신비의 현장이 야나르타쉬(Yanartas)다. ‘야날’이 ‘불’이고 ‘타쉬’가 ‘돌’이니 불타는 바위라는 뜻이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비가 아무리 내려도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대는 화산 활동 지대가 아니다. 석회암 지대다. 불꽃이 나오는 구덩이를 조사했더니 메탄가스가 다른 지역보다 많이 검출됐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수천년간 불꽃이 올라오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신화를 빌려와야 납득되는 비경도 있다.

폐허 도시

야나르타쉬. 키메라 전설이 내려오는 현장이다. 바위틈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올라온다.

야나르타쉬. 키메라 전설이 내려오는 현장이다. 바위틈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올라온다.

야나르타쉬는 해발 2365m 타흐탈르산 발치에 있다. 타흐탈르산의 다른 이름이 올림포스산이다. 그리스의 올림포스산이 터키에도 있다. 산 아래 해변에는 올림포스라 불리는 고대 도시도 있다. 지금의 올림포스는 평화로운 폐허다. 도시 유적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리키아의 도시 국가 올림포스. 허물어진 옛 시청 건물에서 아이가 뛰놀고 있다.

리키아의 도시 국가 올림포스. 허물어진 옛 시청 건물에서 아이가 뛰놀고 있다.

올림포스인은 불을 신성시했다. 불의 신 헤파에스투스를 숭배했다. 야나르타쉬의 영향 때문일 테다. 야나르타쉬와 올림포스는 7㎞ 거리다. 이 도시에 키메라와 관련한 흥미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키메라를 물리친 벨로로폰을 기리기 위해 올림포스에서 달리기 경기를 했단다. 키메라의 불꽃을 횃불에 담아 해안의 올림포스까지 달려오는 시합이었다. 이 횃불 달리기가 훗날 올림픽 성화 봉송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신화고, 어디까지가 역사일까. 보면 볼수록 모르겠고, 알면 알수록 헷갈린다.

터키의 마추픽추

해발 1800m 테르메소스에서 만난 붓꽃. 고대 도시는 폐허가 됐으나 옛날에도 꽃은 이처럼 고왔을 테다.

해발 1800m 테르메소스에서 만난 붓꽃. 고대 도시는 폐허가 됐으나 옛날에도 꽃은 이처럼 고왔을 테다.

안탈리아시 외곽 테르메소스(Tere-messos)는 터키의 마추픽추라 할 만하다. 해발 1800m 산꼭대기에 1만 명이 살았다는 고대 도시가 숨어 있다. 1시간 가까이 산을 오르면 고대 도시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4200명을 수용했다는 원형 극장도 있고, 대형 목욕탕 건물과 거대 광장도 있다.

폐허가 된 도시에는 이름 모를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알아보니 안탈리아 지역 고유종 ‘테르메소스 키그뎀(Teremessos Cigdemi)’이었다. 가을에 피는 붓꽃의 일종으로, 안탈리아 고유종 250개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꽃이라고 한다. 21세기 동양에서 온 여행자처럼 3000년 전에도 이 꽃을 한참 들여다본 사람이 있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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