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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내가 홍보비 해먹는다는 인사 조치하라. 난 후보 부하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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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위 활동을 거부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제주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해 윤 후보 측근을 선대위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했다. 저녁때는 "당 대표는 대통령 후보의 부하가 아니다”란 말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제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인사가 있다”며 “모른다면 그냥 가고, 안다면 인사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당 대표가 자당 대선 후보와 배석한 특정 인사의 문제 발언을 공개하고, 해임 등의 조치를 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당 상임 선대위원장인 이 대표는 홍보미디어 총괄본부장도 겸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홍보 예산이 약 300억원 이상 집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 측이 이 대표가 막대한 예산을 다루는 홍보본부를 맡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뒷말이 나돌긴 했지만, 이 대표가 직접 이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당 관계자는 “후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선대위 인사는 극소수”라며 “대표 입에서 ‘홍보비를 해 먹으려 한다’는 발언이 공개된 자체가 당 입장에선 엄청난 타격”이라고 우려했다.

2일 오후 당무를 중단하고 잠행 중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참배를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2일 오후 당무를 중단하고 잠행 중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참배를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전날 부산과 전남 순천·여수를 방문한 이 대표는 이날 오전 배편으로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장과의 오찬에 이어 평화공원 참배를 마친 이 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윤 후보 측에 대한 노골적 불만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당무 거부 논란에 대해 “당무 거부라고 하는데 나는 우리 후보 선출 뒤 후보의 의중에 따라 사무총장 등이 교체된 이후에는 당무를 한 적 없다”고 말했다. “(조직부총장, 전략기획부총장이었던) 김석기·성일종 의원을 (윤한홍·박성민 의원으로) 교체해달라고 권성동 사무총장이 요청한 것 외에는 어떤 보고나 협의도 없었다”는 것으로, 이른바 ‘대표 패싱’ 논란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 대표는 “(윤 후보 측이) 제가 하라는 것은 다 안 했다. 사전 상의를 요청한 것은 없었고 이수정 교수 영입 등에 있어 대부분 정해진 사항만 통보했다”는 말도 했다.

윤 후보 측 인사들을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얘기를 꺼내며 “김 전 위원장이 원치 않는 시점에 원치 않는 인사를 보내 상황이 악화한 것”이라며 “우리 당 의원들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행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검사 시절인 2016년 국정감사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윤 후보의 과거 발언에 빗대 윤 후보를 공격하는 발언은 또 있었다. 이 대표는 이날 저녁 JTBC 인터뷰에서 “당 대표는 대통령 후보의 부하가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이는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향해 “검찰총장은 장관 부하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윤 후보가 “이 대표가 리프레시(재충전)하러 간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서도 이 대표는 “저는 후보에게 그런 배려를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 대표의 발언은 '윤 후보측'이나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이 아니라 윤 후보를 직접 겨냥해 불편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등 '윤 후보 측' 인사를 향해서도 냉랭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제주에서 “나는 김병준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이라고 생각하고 운영했으면 한다. 언론 활동도 열심히 하는 김 위원장의 (활동) 공간을 위해 나는 지방 일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어디 한 번 김 위원장이 다 해보라’고 비꼬는 뉘앙스로 들렸다”(중진 의원)는 평가가 곧장 나왔다. JTBC 인터뷰에선 김 위원장이 조동연 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에 대해 “아주 예쁜 브로치 하나를 단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발언 자체가 잘못됐다. 60세 넘은 분에게 가르쳐 드릴 수도 없고…”라고 비판했다.

'윤핵관' 논란에 “사리사욕에 충성하는 분들 같다”라고 비판한 이 대표는 “윤 핵관은 여러 명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과거 '파리떼'라고 한 이들이 상대 후보가 아닌 김 위원장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6일 열릴 당 선대위 발족식 참여 여부에 대해 “미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윤석열 대선 후보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윤석열 대선 후보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 대표가 대선을 97일 앞두고 윤 후보를 정면으로 들이받자 당은 크게 술렁였다. 당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보수 정당에서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우려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선을 넘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익명을 원한 3선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당 대표가 내부 진지에 폭탄을 던진 격”이라며 “윤 후보 측의 부적절한 발언도 충분히 당 안에서 진위를 확인해 조치할 수 있었을 텐데 당 밖에서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언급한 ‘홍보비 해 먹으려 한다’는 발언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추측도 이어졌다. 한 야권 인사는 “이 대표 발언 맥락상 최소한 선대위 윗선이거나, 중책을 맡은 인사일 것이라는 말이 당내에 파다하다”고 전했다. 이 대표가 '인사 조처'를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현재 선대위에서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윤 후보와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몇몇 인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윤 후보 측 여러 인사는 “내부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내용"이라고만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일 서울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열린 스타트업 정책토크에 참석해 "대한민국의 미래는 스타트업에 있습니다"라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일 서울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열린 스타트업 정책토크에 참석해 "대한민국의 미래는 스타트업에 있습니다"라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당내에선 극단으로 치닫는 ‘윤석열·이준석 갈등’을 둘러싼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특히 전날 채널A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윤 후보(34.6%)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35.5%)에게 처음으로 밀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당내에서는 “지금 집안싸움 할 때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존재감 부각을 위해 의도적으로 후보와 당을 위기로 몰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다른 초선 의원은 “윤 후보가 이날 이 대표를 놀러 간 사람 취급하며 ‘리프레시 하라’고 하는 등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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