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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가계부채 850조…전월세 보증금 합치면 GDP 89%→1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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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전세·준전세 임대차 보증금은 일종의 숨어있는 부채다. 공식 통계는 아직 없지만,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라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학계·금융권 일각에선 임대차 보증금을 가계부채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임대차 보증금이 지난해 기준으로 85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고제헌 한국주택금융공사 연구위원이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주택 전월세 보증금 규모 추정 및 잠재위험 분석’ 보고서에서다. 소주성특위는 보증금이 주택 시장과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잠재 위험과, 보증금까지 포함했을 때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 등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해 말 한국경제학회에 연구를 발주했다.

연도별 임대차 보증금 규모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도별 임대차 보증금 규모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부채(임대차 보증금) 규모는 850조5783억원으로 추산됐다. 주택유형별로는 아파트가 613조6363억원으로 72.1%를 차지했고, 단독주택이 153조9994억원(18.1%), 연립다세대가 82조9427억원(9.8%)이었다. 임대차 보증금 규모는 2018년 710조2736억원, 2019년 782조6080억원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연구팀은 전세·준전세 가구 수 대비 실거래 건수를 고려해 보증금을 누적 합산하는 방식의 ‘실거래 보증금 누적법’을 이용해 규모를 추산했다. 올해도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전셋값까지 덩달아 오른 만큼 전세부채 규모는 더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준전세는 전체 세입가구의 90%를 차지한다. 특히 전세 같은 임대차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주거 형태다. 연구팀은 “다른 나라와 달리 금융기관을 통한 간접부채에 더해, 주택 임대차와 결합한 가계 간 금융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전세·준전세 보증금이라는 가계부채가 대규모로 존재한다”며 “전체적인 가계부채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 전세·준전세 보증금을 보다 정확히 추정해 포괄적인 가계부채의 규모의 크기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차 보증금을 가계부채에 포함하면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신용(부채) 잔액은 2019년 말 1600조6007억원에서 지난해 말 1727조9160억원으로 불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규모는 83.2%에서 89.4%로 올라갔다. 여기에 임대차 보증금까지 포함한 가계부채 규모는 2019년 말 2383조2087억원, 지난해 말 2578조4943억원으로 늘면서 GDP 대비 규모도 각각 123.8%·133.4%까지 치솟는다.

이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해 2분기 말 기준으로 43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GDP 대비 가계대출 비중 1위인 스위스(129.2%)와 비슷한 수치다. BIS 기준 가계부채는 비영리단체를 포함한 것이라 한국은행 통계보다 크게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위다.

그러나 가계부채에 임대차 보증금을 포함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우선 임대차 보증금은 공공기관의 보증을 받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일반 가계부채와 달리 위험도가 낮다. 전세자금 대출 같은 금융기관의 대출이 가계신용 통계에 들어가 있는데, 임대차 보증금까지 부채에 더하면 ‘중복 계산’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연구팀은 “가계부채는 순(純·net)이 아닌 총(總·gross) 개념으로 봐야 한다”면서도 “전세·준전세 계약은 일반적인 금융계약과 달리 이자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특성, 채무자가 채권자보다 자산이 많을 가능성이 크며 채권자가 일종의 담보권을 확보한 비교적 안전한 계약이라는 특성이 있다”고 짚었다.

가계신용 잔액 및 증감률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가계신용 잔액 및 증감률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심상찮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가계부채 폭증의 ‘도화선’이라는 점에서 임대차 보증금 규모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팀은 “보증금 총 규모가 공표되는 가계부채 총량의 50% 수준일 정도로 매우 크다”면서 “거시경제나 부동산 시장에 큰 경제 충격이 올 경우 실물 및 금융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채널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연구책임자인 김세직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금융권 중심의 가계부채 지표 관리 정책만으로는 국가의 총 가계부채 관리 정책이 부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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