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에 사는 정하연(18)양의 어머니는 2년 전 뇌종양 3기 판정을 받았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쓰러지자 말 그대로 집안의 기둥이 사라진 것 같았다. 고교 1학년이던 하연 양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기로 결심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을 했다. 매일 독한 약에 힘겨워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소화하기 쉬운 음식 위주로 준비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우울해 하는 어머니에게 마사지를 해드리고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어느덧 고3이 된 하연양은 어머니의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간호와 공부 병행한 고3 딸

지난 6월 정하연(오른쪽)양이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사진 정하연양 제공
대학 입시가 닥쳐왔지만, 병간호는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 상태가 악화해 전주의 병원에 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조퇴하거나 학교를 빠져야 했다. 지난달 수능을 치르고 대학 진학을 앞둔 하연양은 그러나 밝게 웃고 있었다. “힘들지만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돌봐주신 것처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면서다. 하연양은 “수도권으로 대학을 가게 되면 어머니도 서울의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시어머니 치매, 남편 림프종 버틴 필리핀댁

지난 7월 30일 블라서바바라자이데(오른쪽) 가족은 서울 쌍문동 자택에서 시어머니의 생일 파티를 했다. 사진 블라서바바라자이데 제공
필리핀에서 온 블라서바바라자이데(45)는 2013년 서울에서 생선가게를 하던 양희영씨와 결혼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두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의 호적에 오르는 데는 3년이 걸렸다. 과거 필리핀의 전남편과의 이혼 처리가 되지 않아 행정소송을 거쳐서야 온전한 가족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남편이 림프종 판정을 받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갈수록 심해졌다. 시어머니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중증 치매 환자였다.
소송에 쓴 비용에 남편의 병원비까지 겹치면서 형편은 어려워졌지만, 블라서바바라자이데는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감정 기복이 심해 돌발행동을 하는 시어머니 옆에서 대소변 수발과 목욕까지 책임졌고, 서툰 한국어에도 남편의 투병생활을 도왔다. 두 자녀에겐 든든한 엄마가 되어주고 있다.
16명의 ‘심청’에 심청효행대상 수상

정하연(왼쪽)양과 블라서바바라자이데. 사진 가천문화재단
가천문화재단은 정하연양과 블라서바바라자이데를 포함해 16명을 제23회 심청효행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심청효행대상은 공모를 한 뒤 서류 심사와 현지 실사를 거쳐 뽑힌 ‘현대판 효녀 심청’에 주어지는 상이다. 가천문화재단 설립자인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1999년 인천 옹진군 백령면에 심청 동상을 만들어 기증한 것을 계기로 제정됐다. 백령도는 고전소설 심청전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심청효행대상은 심청효행상, 다문화효부상, 다문화도우미상 등 세 부문으로 나눠 수상한다. 올해는 정하연양이 심청효행상 부문 대상을 받는다. 본상 수상자엔 정아영(19·서울과기대), 한현지(17·인천신현고)양이 선정됐다. 특별상은 김은정(15·대동여중),박은지(16· 신명여고), 박한나(17세·태안고), 선예린(15·신관중), 윤나라(17·대흥고), 조성지(19· 한국외대), 최나리(24· 구례군학교밖청소년센터)양이 받게 됐다.
블라서바바라자이데가 대상을 받은 다문화효부상 부문의 본상은 중국에서 온 번명현(43·전남 광양)과 인도네시아 출생인 비타윈다리쿠수마(34· 경남 창원)가 받는다. 다문화도우미상 부문에선 사단법인 무지개뜨는언덕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이 단체는 무지개다문화작은도서관과 무지개글로벌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면서 다문화가정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본상 수상자로는 사단법인 부산다문화가족협회와 함사랑지역아동센터가 선정됐다.
가천문화재단은 대상 상금 1000만원, 본상 500만원, 특별상 300만원을 각각 지급한다. 모든 수상자는 무료 종합건강검진권을 추가로 받는다.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개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