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위태로운 역사 인식과 비어있는 역사의식

중앙일보

입력 2021.12.0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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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도자의 역사의식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8세기 이탈리아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는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책 『범죄와 형벌』에 “역사가 없는 나라는 행복하다”고 썼다. 역사란 대체로 폭력적이고 비극적이며 경천동지할 사건들을 기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런 걸 기록할 게 없는 나라가 운이 좋은 나라고 그 국민이 행복한 국민이라는 것이다.

웃자고 한 얘기에 (게다가 100년도 더 지난 마당에)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죽자고 덤벼든다.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1899년 시카고에서 한 연설에서 이렇게 반박한다. “역사가 없는 국가가 행복하다는 것은 저속한 거짓말입니다. 영광된 역사가 있는 나라야말로 행복한 나라입니다.”

반일감정 선동하는 후보와
역사에 관심 없는 후보는
모두 대통령 자격 미달해
역사 속 선각자에 배워야

역사를 바라보는 학자와 정치인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논쟁(?)일 터다. 객관적 시각이 요구되는 학자로서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눈에 더 띌 테고, 국민의 사기를 고양할 (흔히 자신의 사기를 고양할 욕구를 더 느끼지만) 필요가 있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국가의 영광을 강조하게 되지 않겠나 말이다.

분명하면서 중요한 사실은 이처럼 역사가 정치인의 손에 쥐어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에 영광만 계속되면 좋겠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21세기 대명천지에 미국 같은 강대국도 목숨 걸고 자기들을 도와온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을 팽개치고 달아나는 치욕을 겪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경우 학자라면 담담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하겠지만(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학자 출신 정치인이 특히 그렇다),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은 사실을 호도하거나 남의 탓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인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정적의 책임이라면 사실을 더욱 부풀리거나 왜곡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치열한 대선전이 펼쳐지고 있는 두 유력 후보의 손에서 역사가 신음하고 있다. 우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쥐고 있는 역사는 대단히 위태롭다. 그는 지난달 방한한 미국 민주당의 존 오소프 상원의원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한미 관계의 ‘그늘’이라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 얘기를 꺼냈다.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일본이 아닌 한반도가 분단돼 (한국)전쟁의 원인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거였다.

부끄러움은 국민 몫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호기롭게 말했을지 모르나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었다. 손님이 오면 덕담을 하는 게 예의인데 감정 섞인 지적을 한 데서 민망한 게 아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얘기도 덕담 뒤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보다는 너무도 밭은 역사 인식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 7월 미국이 필리핀 통치를 인정받는 대가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 협약이다. 이후 일본이 한반도 식민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 36년을 겪은 걸 미국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고교생도 하지 않을 말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미 상원의원한테 미국 책임을 운운하는 건….

당시가 어떤 시대인가. 산업혁명 이후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제국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였다. 그야말로 세계가 ‘열강’이라는 이름의 제국주의 국가와 그들의 먹잇감인 식민지 국가로 양분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에티오피아 제국과 타이 왕국 등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국가만이 (수많은 이권을 내주고서) 그나마 명목상의 주권을 지킬 수 있던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를 지켜줘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나. 당시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미국에 한반도는 지켜야 할 전략적 가치도 없었고, 한반도에 병력을 파견할 여유도 없었다. 미국이 일본과 밀약을 맺은 것도 그래서 나온 거였다. 몇 안 되는 자신의 식민지를 보장받기 위해서 말이다.

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헨리 키신저가 1994년 펴낸 『외교』에서 전하는 내용이다. “한국은 전적으로 일본의 것이다(Korea is absolutely Japan’s). 조약으로 한국의 독립이 보장돼있기는 하나 한국은 조약을 들먹일 힘이 없다. 자신들도 못하는 일을 다른 나라가 대신 해주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것이 당시의 인식이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우리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지 미국의 탓이 아닌 거다. 그렇지 않다면 여당 후보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한테도 “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는가”라고 따져야 할 일이다.

반일감정 악용이 문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이어 일본은 보름 뒤인 8월 12일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 또 20여일 뒤인 9월 5일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해 영국과 러시아에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받았으며, 그것이 그해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이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인 까닭이다.

내친김에 말하자면 루스벨트의 후임자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8년 1월 연두교서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지만, 그것 역시 1차대전 전후 세계 질서를 새롭게 세우는데 자기들에게 유리해서지 미국이 ‘성인(聖人)국가’여서가 아니다. 게다가 패전국들의 식민지에만 적용됐지 연합국이 지배하는 아시아 지역은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 강화회의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얕은 역사 인식만 위태로운 게 아니다. 거기에 바탕을 둔 근거 없는 반일감정을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더 문제다. 현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편 가르고 자신들의 반대편에 선 보수세력을 ‘토착 왜구’로 모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통령의 수석비서관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반일감정을 선동하는 ‘죽창가’가 울려 퍼질 정도였다.

이 후보는 그 전략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안철수 후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어가는 황소를 낙지가 살렸다는 속설처럼, 강성 지지층을 벌떡 일으켰던 친일 프레임의 마법을 소환한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는 틈나는 대로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려 애쓴다. 그는 얼마 전 “산부인과라는 명칭은 일제의 잔재이므로 여성건강의학과로 바꾸겠다”는 공약까지 내세웠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름을 바꾸는 거야 뭐랄 게 없지만 ‘일제의 잔재’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반일을 내세우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그렇게 치면 자신이 되려는 ‘대통령’이나 자신이 속한 ‘민주당’ 또한 일본이 만든 용어이니 먼저 바꿔야 할 거 아니냐는 얘기다.

여당 역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친일파’로 모는 전략을 구사하며 이 후보를 지원한다. “역사와 배경을 무시한 채 우리 정부가 일본 우경화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발로이며 일본 우익 세력을 두둔하는 행태”라는 것인데, 윤 후보가 다소 무지한 것은 맞는 것 같지만 앞서 말한 대로 역사와 배경을 무시한 것은 그들 자신이다.

윤 후보의 문제는 친일이 아니라 역사의식 부재다. 그것에 대한 우려는 윤 후보가 벌인 몇 가지 해프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캠프 페이스북 계정에 “너희들이 장래에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의 용감한 투사가 되어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술잔을 부어 놓으라”는 윤봉길 의사의 말 아래 윤 후보가 안중근 의사 영정에 술잔을 올리는 사진이 걸리면서 불거졌다.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페이스북을 관리하는 관계자의 자질 부족 탓일 수도 있겠지만, 윤 후보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고 피를 흘리는 모습의 조형물을 보면서 “이건 부마(항쟁)인가요”라고 물었던 전력이 있던 터라 다시 논쟁에 휘말렸다.

대통령 기소하고도 못 배워

어찌 보면 단순한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윤 후보가 확고하고 분명한 역사의식이 있다면 할 수 없었던, 그리고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였다. 윤 후보의 해명을 들어봐도 평소 역사에 관심과 지식이  많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운명을 짊어질 대통령 후보로서는 치명적 약점일 수 있다. 초보 정치인으로서 여의도 정치 문법을 몰라 빚어진 말실수라는 변명이 통할 여지가 없다. 역사의식이 없다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도 그가 왜 감옥에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윤 후보에게 박근혜는 반면교사의 역사가 아니라, 그저 사건 번호 00000번의 특수사건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들을 캠프에 두면서도, 벌써부터 ‘문고리’니 뭐니 잡음이 나오는데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여당과 야당의 두 유력 후보의 역사 인식은 모두 문제가 있다. 유권자들은 역사 인식이 위태로운 인물과 역사의식이 부족한 인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에게는 둘 다 위험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건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 인식을 가진 이는 벼랑 끝에서 가운데로 돌아오고, 역사의식이 부족한 이는 지금부터라도 역사에 침잠해보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누가 되더라도 국가와 국민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한가지 알려주고 싶은 분명한 사실은 역사 속 선각자들은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남을 증오하기보다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구히 흘러온 우리의 정신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여순 감옥에서 일본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벼리는 대신, ‘동양평화론’을 구상했다. 다소 순진한 생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나름대로 미래의 평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 민족 대표 33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3·1 독립선언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병자수호조규 이후 굳게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 해서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않노라. (...) 자기를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하고 꾸짖을 겨를이 없노라. (...) 오늘 우리가 맡은 바는 자기 건설만 있을 뿐이오,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게 아니도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원망 대신 용서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지도자의 품격이다.

모비온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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