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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요소수 대란’ 넘어 국제 통상질서 재편 직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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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화상 정상회담이 지난 15일 열렸다. 시 주석은 미국이 주요 2개국(G2) 공존 체제를 인정하고 양국 협력으로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맡은 부분이 크고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이 중국에 달려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미국의 대외 전략을 주도하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커트 캠벨 국가안보위원회(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지난 2019년 9월 포린어페어스에 공동기고문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오늘날 미·중은 국제관계에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면서 ‘세계의 공장’ 중국은 냉전 시대의 소련과 전혀 다르다고 규정했다. 중국 봉쇄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자국 공급망을 확충하면서 중국 견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중국 정서 탓 능동적 대응 못해
자유주의·시장경제 체제 지켜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국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미세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또한 설리번과 캠벨의 인식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미국의 대외전략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미국 내 공급망 확충을 주도해 왔다.

미국은 유럽연합(EU) 및 일본과 함께 대중국 정책을 긴밀하게 조율해 왔지만 한국은 사실상 제외돼 있다. 미국과 EU는 지난 9월 피츠버그에서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출범시켰고, 얼마 전에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부과했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분쟁을 종식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대중국 공동 대응을 위한 ‘미·일 통상 협력회의’도 설치했다. 이들 자유 진영의 3대 경제권은 중국의 ‘비시장경제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갱신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비시장경제적 체제를 ‘기술 굴기(崛起·우뚝 일어섬)’에 활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국은 25% 추가 관세, 화웨이 5G 견제 등 ‘당 경제(Party economy) 체제’의 핵심 기업에 대한 규제를 발동하고 있다. 또한 신냉전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동맹, 호주·영국·미국의 오커스(AUKUS) 동맹에 이어 이달 중순에 열릴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 초대장을 108개 국가에 발송했다. 중국을 포함해 독재 성향의 국가를 제외해 신냉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지난해 중국에서 공급받던 전기선 다발(하네스) 수급 불안으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된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의 수출 규제로 요소와 요소수 대란이 발생했다. 한국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분리하려는 미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정책과 신냉전 정책을 애써 외면한 측면이 강하다. 우리 기업의 중국 투자도 고려했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친중국 정서가 국제질서 재편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됐다.

뒤늦게 문 정부는 요소수 사태를 계기로 부랴부랴 범용소재 리스크를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자국을 소외시킬 경우 국제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품목 리스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중국산 범용소재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므로 중국의 수출제한으로 피해가 클 수밖에 없으니 지금이라도 품목별 리스크를 평가하고 수입선을 다양화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무리한 국산화보다 글로벌 공급망 활용이 경제적이다.

미·중 어느 한 편에 서면 손실을 보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수 없다지만, 국제질서 재편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손실이 더 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는 국가 정체성에 맞게 국제질서 재편에 동참해야 한다. 내년에 미국 주도로 출범 예정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참여 입장도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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