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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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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JTBC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가 키운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된 육아 초보들 뒤에서 동화 ‘신데렐라’ 속 요정 할머니처럼 힘을 북돋워준 존재, 바로 ‘할맘’이다. 할머니+엄마(mom)의 합성어인 ‘할맘’은 엄마 역할을 하는 할머니를 일컫는다. 물론 아빠 역할을 대신하는 ‘할파파(또는 할빠)’도 있다.

맞벌이 부부, 솔로 육아족이 증가하면서 할맘·할파파도 점차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8 보육실태 조사’에 따르면 가정에서 부모 대신 영유아를 돌보는 사람 10명 중 8명이 조부모라고 한다. 실제로 내 자식을 믿고 맡기기에 할머니·할아버지만큼 든든한 조력자는 없다. 손주들에게도 좋다. 기억해보면 옛날에도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 보낸 방학 기간은 짧았지만 늘 신나고 따뜻한 추억을 많이 남겼다.

JTBC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가 키운다’ 장면. 사진 동영상 캡처

JTBC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가 키운다’ 장면. 사진 동영상 캡처

그런데 정작 할맘·할파파는 불행하다.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겨우 벗어나 이제 좀 쉬어볼까 했는데 덜컥 ‘황혼 육아’를 하게 됐으니 ‘누구를 위한 인생인가’ 허망할 수밖에 없다. 체력은 달리고, 문화적 소통도 어렵다. 최근엔 ‘조부모 아카데미’라는 곳도 생겼다. 손주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조부모에게 육아 팁을 주고, 황혼 육아 스트레스 해소법을 제시하는 강좌들이다. 비슷한 고민의 사람들끼리 대화도 나누고 스트레스를 푸는 건 좋지만, 자식·손주가 원하는 ‘요즘 할맘·할파파’가 되기 위해 뭘 새로 배우기까지 해야 하니 서럽다. 더욱 슬프고 화가 나는 건 할맘·할파파 경험이 1도 없는 정치인들은 절대 알아먹지 못할 얘기라 국가적·사회적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요원하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