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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노예’ 논란에 또다시 멍드는 ‘천사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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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장애인을 불법적으로 고용한 염전은 허가를 취소하라.”

박우량 전남 신안군수가 지난 7월 28일 군청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2014년 1월 신안을 떠들썩하게 한 ‘염전노예’ 사건을 거론한 보도를 의식한 지시였다. 그는 “염전·새우 양식장에서 장애인을 불법고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이 원해도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신안에서만큼은 불법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전수조사도 지시했다.

자칫 장애인 고용 자체를 막는듯한 발언에 지역사회 반응은 엇갈렸다. 세간의 의혹 몇 마디에 7년이나 지난 일을 다시 들추려 한다는 말이 쏟아졌다. 이른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천일염을 생산 중인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 프리랜서 장정필

천일염을 생산 중인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 프리랜서 장정필

반면 상당수 주민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장애인 불법고용은 근절돼야 한다”고 했다. 염전노예 사건 당시 주민들에게 씌워진 멍에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2014년 당시 신안은 장애인들을 감금하고 강제로 노동을 시켜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후 주민들은 염전노예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천사섬 마케팅’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천사(1004) 섬이란 신안군 관내에 유인도와 무인도가 1004개가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프로젝트다.

박 군수의 지시가 떨어진 두 달여 뒤. 신안 지역 염전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석연치 않은 정황이 불거졌다. 신안 지역 모 염전 사업주인 A씨(48)가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A씨가 염전 인부 B씨(53)의 임금을 제때 주지 않고 신용카드를 부당 사용한 혐의로 입건했다.

염전노예 사건 재발 의혹에 신안 안팎은 들끓었다. 전남 지역 인권단체들이 노동착취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전남의 7개 단체는 지난달 26일 전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 염전노예 사건 이후 7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외쳤다. 아울러 염전 노동자 B씨 사건을 비롯해 신안 염전 전체에 대한 재조사 등을 요구했다.

신안군 안팎에서는 또다시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과 “과잉 대응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맞섰다. 일각에서는 “명확히 염전노예라는 실체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애꿎은 주민까지 공범으로 몰고 있다”는 원성도 나왔다.

그동안 염전노예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노심초사해온 주민 대부분은 외려 명확한 진상규명을 원하는 분위기다. “이번만큼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자라(염전노예)’인지 ‘솥뚜껑(과잉대응)’인지를 명확히 하자”는 입장이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임금 미지급과 신용카드 부당 사용 등의 혐의(사기)로 염전 사업주인 A씨를 구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