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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어처구니없는 RCEP 늑장 비준 책임 물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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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내년 1월 발효가 공식 확정되면서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참여하는 거대 시장 출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내년 1월 발효가 공식 확정되면서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참여하는 거대 시장 출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연합뉴스]

중국·일본 1월부터 FTA 효과 누리는데

수출이 생명줄인 한국은 ‘관세 왕따’ 돼

정부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늑장 비준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어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인 RCEP 비준 동의안을 의결했다. 이날 국회는 RCEP 비준을 위해 별도로 법안심사소위를 열었다. 그만큼 다급하게 비준안을 처리했다는 얘기다. 그간의 경과를 돌아보면 정부의 무능함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사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15일 이 협정을 체결했다. 그 사이 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는 자국 내 비준을 마쳐 2022년 1월 1일부터 서로 관세 혜택을 받게 됐다. 이 협정에 서명한 나라는 한·중·일을 주축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등 모두 15개국에 달한다. 전체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6조 달러(약 3경901조원), 인구는 22억7000만 명, 무역 규모는 5조6000억 달러(6656조원)에 이른다. 이 협정이 최종 발효되면 전 세계 인구와 GDP의 약 30%를 차지하는 ‘메가 FTA’가 된다. 세계 7대 수출 대국으로 꼽히는 한국 입장에서 이 협정은 그야말로 우리 기업들의 황금어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협정 비준안 처리를 1년 넘게 뭉개면서 한국은 졸지에 ‘관세 왕따’가 되고 말았다. 어제 비준안을 통과시켰지만, 협정 발효를 위해서는 비준서 제출 후 60일이 지나야 한다. 그 사이 우리나라와 치열한 경합 관계에 있는 중국과 일본은 이 거대 시장에 들어가 마음껏 고객 선점에 나선다. 한국 기업은 무관세 혜택이 미뤄지면서 그만큼 기회를 잃게 됐다.

정부의 해명은 가관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농업 등 국내 산업에 미칠 파장 분석과 보완 대책 마련이 지난 9월께 끝나 10월에야 국회에 비준안을 제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FTA로 세계 최대의 통상 영토를 구축한 우리나라의 경험에 비춰볼 때 궁색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통상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실리보단 외교적 이해득실로 좌고우면했단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표류하는 사이 중국은 RCEP 출범을 주도하더니 미국이 트럼프 정부 당시 주도권을 내놓고 손을 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TP) 가입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일본·호주·뉴질랜드는 이미 이들 두 거대 FTA에 가입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수출에 전력을 쏟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야말로 수출이 생명줄 아닌가. 경쟁국들이 모두 차질없이 관세 혜택을 받는 시점에 비준이 늦어져 관세 왕따가 된 책임은 가볍지 않다. 청와대 수석이든, 산업부 장관이든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