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사극, 내용은 현대물…MZ세대 홀린 ‘한복 로맨스’

중앙일보

입력 2021.12.02 00:03

지면보기

종합 20면

KBS2 ‘연모’()에서 남장여자로 왕이 되는 이휘(박은빈)와, MBC ‘옷소매 붉은 끝동’(아래 사진)에서 왕이 되려는 세자의 의논 상대가 되는 궁녀 성덕임(이세영) 모두 기존 사극보다 주체적으로 그려진 여성 주인공이다. [사진 KBS]

KBS2 ‘연모’()에서 남장여자로 왕이 되는 이휘(박은빈)와, MBC ‘옷소매 붉은 끝동’(아래 사진)에서 왕이 되려는 세자의 의논 상대가 되는 궁녀 성덕임(이세영) 모두 기존 사극보다 주체적으로 그려진 여성 주인공이다. [사진 KBS]

지상파 사극 로맨스가 진화했다. 젊은 세대 눈높이 접근으로 시청률·화제성을 끌어올리고, 글로벌 OTT까지 인기를 누린다. KBS2 ‘연모’,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 얘기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 ‘연모’는 조선 중기 가상의 왕 ‘혜종’의 딸 이휘(박은빈)가 남장을 하고 왕이 되는 이야기,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옷소매’는 실존인물인 정조와 의빈 성씨 덕임의 이야기다. ‘연모’는 시청률이 1회 6.7%에서 최근 10%까지 올랐고, 6주 연속 넷플릭스 공식 집계 글로벌 10위권에 들었다. 특히 11월 8~14일에는 1위 ‘오징어 게임’에 이어 2위까지 올랐다. ‘옷소매’도 시청률 상승세가 가파르다. 첫 회 5.7%에서 지난주 6회가 9.4%를 기록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에 따르면 3주 연속 드라마 부문 화제성 1위·통합 화제성 1위다.

이들 작품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 대신 개인에 초점 맞춘 것이 특징. 조선시대 여성이 남장을 한 채 왕이 되는 일은 불가능했을 사건이지만, ‘연모’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비추지 않는다. 그보다는 불가피하게 여장남자가 된 이휘의 개인적 고민을 그린다. 김성수 평론가는 “껍데기는 사극, 내용은 현대물”이라며 “신분제 등 구조적 문제를 갈등을 심화시키는 장치로 활용하는 등 ‘사극’은 틀만 이용하고, 이야기는 ‘현대적 고민’으로 채웠다”고 분석한다.

김헌식 평론가는 “사극의 원작 웹툰·소설 작가들도 젊어지면서 현 세대의 고민을 반영하게 된 것”이라며 “‘대장금’에서 그렸던 거대한 성공과 의미가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생존적 욕망을 그려 공감가고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제시했다”고 평했다.

KBS2 ‘연모’(위 사진)에서 남장여자로 왕이 되는 이휘(박은빈)와, MBC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왕이 되려는 세자의 의논 상대가 되는 궁녀 성덕임(이세영) 모두 기존 사극보다 주체적으로 그려진 여성 주인공이다. [사진 MBC]

KBS2 ‘연모’(위 사진)에서 남장여자로 왕이 되는 이휘(박은빈)와, MBC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왕이 되려는 세자의 의논 상대가 되는 궁녀 성덕임(이세영) 모두 기존 사극보다 주체적으로 그려진 여성 주인공이다. [사진 MBC]

공희정 평론가는 “원래도 사극 주연들은 2030이긴 했지만 이번 작품들에서 유독 주연들이 돋보이는 건, 이야기가 이들의 시선으로 흐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도 새롭다. ‘옷소매’는 과거 MBC ‘이산’에서 조력자로 그려졌던 성덕임을 ‘동반자’로 발전시켜 그려냈고(공희정 평론가), ‘연모’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이 아니라 ‘가부장제를 정면으로 흡수한 뒤 깨는’ 여성을 그려냈다(김성수 평론가). 김성수 평론가는 “여성 주인공이 ‘왜 왕이 될 수 없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왕이 됐다”며 “그 이후 나는 행복한가,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캐릭터로, Z세대에 통하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로맨스를 내세운 점도 주효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한동안 판타지 사극, 장르 사극이 유행했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로맨스를 다루는 사극만 남은 것”이라며 “현대극이라면 유치해보일 수 있는 부분도 사극으로 풀면 더 세련되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주창윤 교수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큰 논란 없이 상상력을 펴기 좋은 소재라, 앞으로 사극에서 ‘로맨스’는 더욱 주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모’의 박은빈(29)·로운(25), ‘옷소매’의 이세영(29)·이준호(31) 등 젊은 주연 캐스팅도 호평을 받는다. 정덕현 평론가는 “A급 배우들이 지상파에 잘 안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됐고, 오히려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얼굴들이 기용되며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했고, 김헌식 평론가도 “사극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타일의 남자 주인공을 내세워 주 시청층인 여성들을 공략하고, 사극의 진부한 느낌을 희석시켰다”고 분석했다.

사극은 본래 지상파의 강점으로 꼽힌다. 정덕현 평론가는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대표되는 남장여자 이야기와 ‘대장금’ ‘이산’ 등에서 보였던 트렌디한 사극 스타일이 그대로 ‘연모’와 ‘옷소매’로 이어졌다”며 “지상파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와중에 그나마 살아있고 지상파 플랫폼에 어울리는 작품이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조선구마사’ 같은 ‘역사 왜곡 논란’은 영리하게 피해갔다. 김성수 평론가는 “고증을 자세히 하거나(‘옷소매’), 아예 상상력이 역사적 스토리를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부분에서(‘연모’)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짚었다. ‘옷소매’의 MBC 관계자는 “원작부터 고증이 잘 된 작품”이라며 “실존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고증에 더 신경을 쓰고, 상상력이 들어가는 부분도 그 시대에 있을법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연모’의 글로벌 인기에 대해 공희정 평론가는 “‘킹덤’ 이후 한국 콘텐트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난 데 더해, 최근 ‘오징어 게임’ ‘지옥’ 등 작품들이 흥행한 후광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했고, 주창윤 교수는 “최근 강렬했던 한국 콘텐트와는 다르게 화사한 화면, 전혀 다른 장르인 점도 매력 요소”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