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정보수장 경고 "中 과도한 자신감, 국제안보 위협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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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영국 비밀정보국(SIS)의 국장으로 취임한 리처드 무어의 모습. [AP=연합뉴스]

중국이 자국 내 반(反)서방 선전에 따른 과도한 자신감과 믿음으로 국제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오판'을 할 수 있다는 영국 정보당국 수장의 경고가 나왔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비밀정보국(SIS 또는 MI6) 국장인 리처드 무어가 이날 런던에서 열린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 주최 행사에 이같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SIS는 제임스 본드 영화를 통해 MI6로 더 잘 알려진 영국 외무부 소속 정보기관이다. 무어 국장은 "중국의 부상에 따라 변화한 세계질서에 적응하는 것이 MI6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SIS 국장에 취임한 그의 공식 연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어 국장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 정보당국은 능력이 뛰어나고 영국과 동맹국을 상대로 대규모 스파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다 대만 문제를 필요시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중국공산당의 야망이 세계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사회 담론과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독재권력이 인터넷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해 점점 더 과감하고, 단호한 행동을 선호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이란, 러시아, 국제 테러리즘과 함께 중국을 MI6가 설정한 4대 위협 요소로 꼽았다.

FT는 영국 정보기관 수장의 이같은 발언이 중국의 위협을 다루는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영국 정부의 입장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도 무어 국장의 발언은 영국 고위관리의 중국에 대한 발언 중 가장 날카롭다는 평가를 내놨다.

특히 무어는 "중국은 서방이 허약하다는 자국의 선전을 믿으며 미국의 결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과도한 자신감을 통한 중국의 오판 위험이 실재한다"고 경고했다. FT는 그가 이 발언에서 대만을 직접 연결하지는 않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신의 재임 기간에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에 대해 서방 국방·안보 담당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무어 국장은 일대일로에 따른 중국의 자본 침투와 기술 확산에 대한 경고도 곁들였다. 중국이 '부채와 데이터 함정'을 통해 다른 나라에 침투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정치적 강요에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스리랑카는 2017년 항만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용하던 중국 국영기업의 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이 항구를 중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무어 국장은 이날 연설에 앞서 BBC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감시기술을 통해 전 세계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핵심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치한다면 해당국은 더는 데이터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은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對中) 견제에 호주, 일본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미국·호주와 함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방위 기술을 공유하는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켰다. 또한 최신예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항모전단을 지난 5월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보내 남중국해에서 미국 항모전단과 연합훈련을 했다. 영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말부터는 2척의 초계함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상주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총리 명의로 작성해 지난 3월 의회에 제출한 '경쟁시대의 글로벌 영국(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age, March 2021)'이라는 제목의 국가 전략서에서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을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