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실수로 아내 찔렀다" 믿은 경찰, 내사종결 2년 슬픈 반전

중앙일보

입력 2021.12.01 05:00

폭력 이미지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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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18일 오전 5시쯤, 부산 연제구에서 119로 “흉기에 찔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연산동의 한 자택에서 20대 여성이 직접 신고를 한 상황이었다. 사건 현장은 처참했다. 흉기가 여성의 갈비뼈를 관통해 많은 출혈이 있었다. 여성은 인근 종합병원으로 후송됐다. 가해자는 여성의 남편(32)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사건추적]

아내 흉기에 찔렸는데 “살 빼라고 장난치다가…”

피해 여성은 늑간 근육과 동·정맥이 파열돼 봉합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남편으로부터 다소 황당한 진술을 들었다. “아내가 출산 이후 살이 많이 쪄서 아내에게 살을 빼라고 말하며 식칼을 쥐고 흔들면서 장난을 치다가 어쩌다 보니 찌르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후 사건은 내사종결됐다. 치료를 받은 아내도 “남편의 실수였다”는 취지로 진술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남편으로부터 등쪽 날개뼈 부위에 식칼로 찔린 아내의 상처. 갈비뼈를 관통해 늑간 근육과 동·정맥이 파열된 아내는 봉합 수술을 받았다. 피해 여성 제공

남편으로부터 등쪽 날개뼈 부위에 식칼로 찔린 아내의 상처. 갈비뼈를 관통해 늑간 근육과 동·정맥이 파열된 아내는 봉합 수술을 받았다. 피해 여성 제공

1년 5개월이 지난 뒤,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찌르고, 찔렸다’는 부부의 진술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잘못이 바로잡히게 된 것이다. 아내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범죄자 자식 만들겠느냐”는 남편 말에 “실수로 찔려” 진술  

경찰의 재수사 결과, 실수로 결론 났던 사건은 실제로는 아내와 다투던 남편이 주방에서 흉기를 꺼내 협박하면서 등 쪽 날개뼈 부분을 찌른 상황이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 남편이 “내가 일부러 찔렀다고 하지 말아달라. 그러면 취직도 안 되고 평생 돈을 벌 수 없다”고 아내에게 호소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 이미지그래픽

경찰 이미지그래픽

아내가 입원한 기간에 남편은 “경찰에서 진술할 때 입을 맞추자. 싸우다가 흉기에 찔린 게 아니라 요리하다가 실수로 흉기에 찔린 것으로 거짓 진술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아이를 범죄자의 자식으로 만들겠느냐” “앞으로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남편의 말을 아내는 믿어보기로 했다. 결국 경찰에서 “새벽에 남편이 부엌에서 요리하다가 식칼을 들고 있던 손을 뻗는 과정에서 옆에 서 있던 제가 찔리게 된 것이다”고 진술했다. 과실상해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상황이어서 사건은 종결됐던 것이다.

폭력 계속되자 재수사 요구, 남편 1년 10개월 만에 기소

처벌을 면했던 남편이 이후에도 폭력을 멈추지 않자 결국 집을 나온 아내는 지난 6월 살인미수 혐의로 남편을 고소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을 한 경찰은 일부 혐의를 확인해 특수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부산지검은 지난달 5일 남편을 불구속 기소했다.

부산연제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당시 피의자와 피해자는 주방에서 부주의로 상처가 났다는 공통된 진술을 했고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혀 당시에 내사종결을 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살인 미수 혐의 대신 특수상해 혐의가 적용된 이유에 대해선 “피해 부위와 피해 정도, 사망의 결과 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해 볼 때 살인의 고의성은 인정되지 않아 특수상해로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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