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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초유의 옹벽아파트, 준공승인 보류…안전에 발목 잡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 성남시 백현동 구(舊)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지어진 아파트. 옹벽과 아파트 사이가 가까운 곳은 6m에 불과하다. 함종선 기자

경기 성남시 백현동 구(舊)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지어진 아파트. 옹벽과 아파트 사이가 가까운 곳은 6m에 불과하다. 함종선 기자

국내 아파트 단지 중 유례가 없는 50m 높이의 수직 옹벽 앞에 들어선 성남시 백현동 판교A아파트(전용면적 84~129㎡, 1223가구)에 대해 성남시가 사용승인(준공)검사 신청을 반려했다.

옹벽의 안전성 문제 때문인데, 성남시는 자체적으로 준공승인을 내주기는 어렵고 행정소송 결과에 따르겠다는 방침이다. 행정소송에 걸리는 시간, 그리고 소송결과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이 아파트를 분양받은 성남시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준공승인이 나지 않으면 토지에 대한 보존등기가 되지 않아 은행 대출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지난 6월 임시사용승인만 난 상태에서 입주를 시작한 이 단지 입주민들은 옹벽과 붙은 커뮤니티 시설 등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당시 모델하우스에 있던 아파트 모형도. 모형도상으로는 옹벽이 높지 않게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아파트 11층에서도 옹벽이 바로 앞에 보일 정도로 높다. 포스코건설

아파트 분양당시 모델하우스에 있던 아파트 모형도. 모형도상으로는 옹벽이 높지 않게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아파트 11층에서도 옹벽이 바로 앞에 보일 정도로 높다. 포스코건설

시행사, 옹벽 안전 연구보고서 시에 미제출

성남시 관계자는 "A아파트의 준공승인을 위해 지난 8월 6일 시행사인 아시아디벨로퍼에 전문기관 2곳의 안전성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며 "그런데 시행사는 전문기관 2곳 중 한국건축학회 보고서만 제출했고 한국지반공학회 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아 시행사가 낸 아파트 사용승인 검사신청서를 반려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시아디벨로퍼가 왜 한국지반공학회의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지반공학회 관계자는 "진작에 연구용역보고서를 완성해 용역 발주처인 아시아디벨로퍼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지반공학회는 보고서를 완성해 아시아디벨로퍼에 전달했는데, 아시아디벨로퍼가 이 보고서를 성남시에 제출하지 않아 준공승인을 받지 못한 것이다.

안전에 대한 부정적 의견…준공 승인받기에 불리한 내용

한국지반공학회는 전국 대학의 토목공학과 교수 등 지반 공학을 연구하는 1만2500명의 전문가를 회원으로 둔 학회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지반공학회 소속 교수는 "보고서에 큰 지진이 날 경우 옹벽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교수는 "보고서에 준공승인을 받기에 불리한 내용이 있었는지 아시아디벨로퍼 측에서 한국지반공학회에 용역비 잔금도 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현동 판교A아파트 옹벽 지대는 전형적인 편마암으로 암석 색깔이 검은회색을 보인다. 네이버 항공뷰

백현동 판교A아파트 옹벽 지대는 전형적인 편마암으로 암석 색깔이 검은회색을 보인다. 네이버 항공뷰

또 다른 토목 전문가는 "백현동 아파트 사업지 일대는 편마암 지대로 2018년 붕괴된 서울 동작구 상도 유치원 부지와 같은 암석"이라며 "편마암의 엽리방향은 북동방향이며 78도 경사는 남동쪽으로 백현동 아파트 부지 쪽으로 향하고 있어 지질구조가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소송 결과로 준공승인 여부 결정 

이같이 시행사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음에 따라 이 아파트 준공승인 여부는 행정소송 결과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행정소송을 하더라도 법원이 똑같이 전문기관에 안전성 검토를 의뢰할텐데, 국내 최고 권위의 지반공학회 보고서가 이렇게 사라진 상황에서 누가 자신 있게 검토를 할 지 의문"이라며 "준공승인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백현동 인허가 비리를 파헤치고 있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단순히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준 사건을 넘어 이재명 시장 당시의 각종 인허가를 믿고 아파트를 분양받은 1200여 가구 성남시민들의 재산과 안전이 걸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백현동 (일부) 결재문서에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후보와 정진상 정책실장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사건을 뭉개고만 있기 때문에 특검 도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송평수 민주당 선대위 부대변인은 "시장은 아파트 인허가 심의 위원들의 결정에 따르는 게 일반적"이라며 "만약 시장이 사후보고를 받더라도 위원회 위원들이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것을 시장이 뒤집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아시아디벨로퍼 측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백현동 아파트는 대장동과 비슷한 시기인 2015년 2월부터 사업이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성남시가 국내에 전례가 없는 4단계 종 상향(자연녹지→준주거)등을 해주면서 민간사업자에 대한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1200여 가구 분양으로 사업자 4000억 수익…국내 최고 수익률

한국식품연구원이 있었던 이 부지는 서울 비행장 옆이라 고도제한 때문에 아파트를 일정 높이 이상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사업자가 종상향으로 허가받은 용적률(316%)을 다 쓸 수 있게 땅을 30m가량 깊게 파고 산을 수직으로 깎아 옹벽을 만든 것이다. 박수영 의원이 입수한 회의록에 따르면 당초 이 아파트는 15층 높이의 테라스하우스로 계획됐지만 앞서 진행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25층 높이의 아파트로 바뀌었다.

이 아파트 사업자들은 백현동 프로젝트에서 3143억원의 일반 아파트 분양이익(감사보고서상)과 아직 분양 전환하지 않은 민간임대아파트 123가구에 대한 이익 약 900억원을 합해 4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챙기게 된다. 30여년간 시행업을 했다는 A건설사 대표는 "1200여 가구 분양으로 4000억원의 이익을 챙긴 것은 국내 아파트 개발 역사상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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