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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꽉 찬 중환자실, 누굴 먼저 입원시켜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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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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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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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전국 중환자실이 거의 꽉 찼다. 지난달 29일 오후 5시 기준 서울 중환자 병상의 91%가 찼다. 경기는 86.9%, 인천은 83.5%로 올랐다. 서울아산병원(41개), 신촌세브란스병원(37개) 병상이 모두 찼다. 서울성모병원은 1개, 서울대·삼성서울병원은 각각 2개, 3개 남았다. 이미 포화상태다. 날이 갈수록 이런 상황이 악화할 게 뻔하다. 정부가 곧 대형병원에 “중환자실을 추가로 내놔라”고 명령할 것으로 보인다.

강제명령을 내려도 병상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환자실은 전문의나 전문간호사, 장비 등이 필요해 하루아침에 뚝딱 늘릴 수 없다. 내놓는다고 해도 비(非)코로나 중증환자에게 돌아갈 중환자실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비코로나 환자의 사망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한정된 중환자 병상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최근 “재난 상황에서 중환자 진료는 최대한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운영돼야 한다. 보건당국·전문학회·시민사회가 합의하는 중환자 입실과 퇴실 지침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환자의학회 입·퇴원지침 공개
최대한 많은 생명 구하기에 집중
예측생존율 20% 이하는 후순위
“실제 적용은 어려울 것” 지적도

입원 우선순위 1~4위 제시

지난달 24일 코로나19 거점병원인 평택 박애병원 중환자실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4일 코로나19 거점병원인 평택 박애병원 중환자실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스1]

중환자의학회는 지난해 8월 코로나19 2차 대유행 때 ‘감염병 유행 시 거점병원 중환자실 프로토콜’을 내놨다. 한국의료윤리학회의 검토를 거쳤다. 학회 제안의 원칙은 ‘최대한 많은 생명 구하기’이다. 확진자가 ▶쇼크 ▶의식저하 ▶급성호흡부전으로 고유량 산소나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 ▶중환자전문의가 입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입원시킨다.

입원대상자가 동시에 발생할 때 누굴 먼저 입원시킬지 1~4위를 제시했다. 우선순위가 가장 빠른 사람은 ▶병이 없던 때처럼 활동이 가능하거나 활동은 제한되지만 가벼운 노동을 할 수 있는 경우 ▶정상 건강 환자이거나 가벼운 전신질환(비만 등) 환자 ▶1개의 장기부전 ▶예측생존율 80% 이상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이다. 거동능력, 문제가 생긴 장기의 수, 예측 생존율 등을 따져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중환자실·준중환자실 입원 기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환자실·준중환자실 입원 기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우선순위 4위는 ▶뇌·심장·폐 등의 말기장기부전 ▶중증외상·중증화상(예측사망률 90% 이상) ▶대량 뇌출혈 이나 중증 치매 같은 심각한 뇌기능장애 ▶기대여명 6개월 미만의 말기암 ▶최근 3개월 사이에 심근경색·뇌경색 등을 앓았거나 중증외상, 두개강내 출혈 등으로 생존이 어려운 환자 ▶예측생존율 20% 이하 등 6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경우다.

학회는 퇴원 기준도 정했다. 입원 48시간 동안 또는 증상 발생 10일 후 발열이 없거나 산소요구량이 줄고 있거나 흉부 사진에서 병의 진행이 보이지 않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경우이다. 다만 지금처럼 중환자가 급증할 때는 사망이 임박하거나, 3주 이상 집중치료했는데도 호전되지 않고 사망 가능성이 높은 경우(환자나 보호자가 치료를 원하지 않음), 뇌사자 또는 임상적으로 뇌사자로 판단된 사람은 가족 동의를 받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퇴원시킨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자문임상교수는 “평시에는 병원에 온 순서대로 해야 하지만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고, 치료 후 기대수명을 늘리고, 치료 후 복귀시킬 수 있는 사람부터 우선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기저질환이 적고 건강한 사람이 우선”이라며 “연명의료 중단 기준을 좀 더 확대해 적용하고 이를 따르는 의료인을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중환자의학회는 이런 프로토콜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침 제정을 재차 촉구할 예정이다.

미국·영국 등 비슷한 기준 적용

중환자 급증해 병상 없거나 부족할 때 퇴실 기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환자 급증해 병상 없거나 부족할 때 퇴실 기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박성훈 대한중환자의학회 홍보이사(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진자 중 회복 가능성이 떨어지고 심폐소생술 금지요청서(DNR) 등을 소지한 환자의 중환자실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야 한다. 생존율이 높은 환자를 먼저 치료하도록 우선순위를 정해달라고 정부에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순위 1~4위 중 4위만이라도 뒤로 늦추자는 뜻이다.

선진국은 이런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저널 ‘바이오에틱스(Bioethics)’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환자 우선순위 권고기준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이득이 가게 하고,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영국·이탈리아도 비슷하다. 스위스는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을 정한다고 해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 ‘내가 먼저 등록했는데 왜 저 사람이 먼저냐’ ‘아직 다 낫지 않았는데 왜 내보내느냐’라는 항의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요양병원에서 악화한 고령의 확진자를 중환자실로 보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런 비슷한 문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택치료 중 악화한 환자의 전원, 요양병원 환자의 전원 등을 터 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