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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대선 매표 행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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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1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가상자산을 말하다'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1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가상자산을 말하다'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국회,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 의결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조세원칙 훼손

대선을 앞두고 표를 구애하는 포퓰리즘이 춤추고 있다.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가상자산 과세가 1년 유예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30일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 등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로 연 250만원을 초과한 소득을 거둔 투자자는 2023년 1월부터 양도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르면 12월 초 본회의에 상정, 의결될 전망이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투자에 관심이 높은 젊은층의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여야가 합의해 과세를 무력화한 것이어서 유감스럽다. 앞서 정의당은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대해 “기득권 양당의 밀실 야합”이라며 “과세 형평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까지만 해도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가상자산 양도차익에 대해 예정대로 내년부터 과세한다”고 최종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가상자산 과세는)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2023년과 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며 대선 이후로 과세를 미룰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결국 가상자산 투자에 적극적인 20~30대 청년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세금 포퓰리즘에 굴복한 셈이다.

그간 과세 유예를 반대해 온 기획재정부도 국회의 포퓰리즘 앞엔 무력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기재위 의결에 앞서 “과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내년부터 과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면서도 “다만 법 개정 문제는 국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여야가 이처럼 결정한다면 정부는 입법을 받아들이고 이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뚜렷한 명분도 없이 과세를 유예하면 2023년에도 또다시 과세 유예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둔 ‘과세 유예 포퓰리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에는 금융위원회가 당시 두 달 뒤로 다가온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주식 공매도 금지를 5월 3일까지 재연장했다. 공매도 재개 후 증시 폭락을 우려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반대 여론이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애초에는 3월 15일에 공매도를 재개할 계획이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서 팔고, 주가가 하락하면 되사들여 갚은 뒤 차익을 얻는 거래 방식이다.

가상자산 투기 열풍을 누그러뜨리고,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기기 위해 법을 만들었으면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하는 게 옳다. 조세원칙을 무너뜨리고, 투기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정치권은 책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