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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할까봐 부당 지시 거절 못해" 유은혜 만난 현장실습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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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웅천친수공원에서 요트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여수의 한 특성화고교 3년 홍정운 군의 추모문화제가 열려 한 학생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웅천친수공원에서 요트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여수의 한 특성화고교 3년 홍정운 군의 추모문화제가 열려 한 학생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현장실습을 다녀왔는데, 학생들은 어른의 요청을 거절할 힘이 없거든요. 어른들이 교육을 받아서 학생에게 시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A특성화고 재학생 최모양)

“현장실습은 업무를 체험하고 배우기 위해 하는 것이지 노동을 제공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현업에 계신 분과 학생의 노동 강도가 같으면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B특성화고 재학생 신모군)

30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만난 학생들은 본인이나 친구가 현장실습에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이날 교육부가 개최한 현장실습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는 여수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故홍정운 군과 같은 학교 친구도 있었다. 김모군은 “다시는 제 친구와 같은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취업 압박감에 부당한 지시 거부 못해" 

(서울=뉴스1)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현장실습제도 보완을 위한 학생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뉴스1]

(서울=뉴스1)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현장실습제도 보완을 위한 학생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뉴스1]

이날 참석한 21명의 학생은 현장실습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홍정운 군과 같은 학교 친구인 차모양은 “학교에서 '거부해도 된다'고 배우고 가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절하거나 거부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과 연결되기 때문에 거부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있다”고 말했다.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있었다. C특성화고 재학생 황모양은 “제가 현장실습하고 있는 곳은 이미 계신 직원분과 실습생의 업무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강도도 차이가 없다”며 “선생님께 어려움을 말씀드렸지만, 뚜렷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현장실습비 정부가 지원해달라"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학생들은 ‘어른들을 교육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김모 군은 “학생들만 현장실습 교육을 받을 게 아니라 업주, 사장님들도 교육을 받아 안전하게 현장실습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모 양도 “어른들이 현장실습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 학생들에게 시키면 안 되는 일은 시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이 받는 현장실습비를 정부에서 모두 지원해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현재는 학생이 받는 실습비 중 약 70%를 기업체가, 나머지 30%를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D특성화고 재학생 최모양은 “회사 입장에선 현장실습에 비용을 지불하니까 학습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최대한 회사에 도움이 되는 강도 높은 업무를 시키려 할 수밖에 없다”며 “관련 실습비를 국가에서 지원해준다면 회사에서도 무리한 노동을 시키지 않고 학습 중심으로 교육시킬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제안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그 내용을 포함해 제도 개선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양질의 현장실습처 발굴도 정부가 나서야"  

24일 오전 전남 여수시 소라면 예다원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홍정운 군의 49재가 열려 묘비 앞에 생일 케이크와 조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전남 여수시 소라면 예다원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홍정운 군의 49재가 열려 묘비 앞에 생일 케이크와 조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제도가 개선되는 것도 좋지만, 제도에 대한 관리·감독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모 군은 “제가 찾아본 것만 해도 201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현장실습 사고가 일어나는데, 거기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며 “대책을 내세우거나 방안을 만들었다면 그게 잘 지켜지도록 관리·감독이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습처 발굴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교총 임운영 부회장(경기 경일관광경영고 교사)은 “학교나 학생들이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부 당국이 양질의 현장실습처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줘야 한다”며 “현장실습 기업이 점차 줄어들지 않도록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선택지를 늘려야 안전한 실습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말로만 대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가동되는 대책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며 “학생들이 전문 기술 인력으로 성장하는데 실질적 도움이 되면서도 안전하고 유익한 현장실습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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