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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숨 못쉬겠다“···폐기물 태워 만드는 시멘트 논란

중앙일보

입력

강원 영월군의 한 시멘트 공장 전경. 강찬수 기자

강원 영월군의 한 시멘트 공장 전경. 강찬수 기자

# 16일 청와대 사랑채 앞. 시멘트 공장에서 배출된 오염물질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가 손을 잡고 '전국시멘트대책위원회' 출범을 선언했다. 이들은 정부가 시멘트 공장 연료로 쓰는 유연탄을 폐합성수지 등으로 대체해 탄소중립 추진하는 건 "국민을 병들게 하는 정책"이라고 맹비난했다.
# 3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토론회 발표에 나선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국내 시멘트 업계가 2019년에만 폐기물 806만t을 재활용하면서 연간 268만t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면서 "시멘트 산업의 폐기물 재활용으로 연 5031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을 태운 시멘트 확대를 놓고 엇갈린 풍경이다. 한쪽에선 '대기오염'을 외치며 반대하고, 다른 한쪽에선 '탄소중립'을 강조하며 필요성을 역설한다.

시멘트 제조 과정서 나오는 먼지·유해물질 등에 따른 대기오염 문제는 논란이 된 지 오래다. 시멘트 업계는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3%에 불과하지만, 미세먼지 배출 총량은 8%에 달하는 대표적인 '굴뚝 산업'이다. 환경부가 공개한 지난해 연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에 따르면 상위 사업장 10곳 중 4곳이 시멘트 공장이었다. 공장 인근 주민과 업체와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기에 폐기물 사용 확대 문제가 끼어들면서 갈등 요인은 더 복잡해졌다. 특히 탈(脫) 탄소ㆍ탄소중립 같은 정부 정책, 코로나 발(發) 플라스틱 쓰레기 급증 등이 맞물리면서 최근 주민ㆍ환경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졌다.

"플라스틱 타는 매캐한 냄새 때문에 봄 가을에 창문을 못 열어요. 특히 작년 말부터 너무 심해졌어요."

강원 강릉시 한라시멘트 공장 인근에 산다는 주민 장민송(45)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동네에 오가는 차량을 보면 정화조 오니 냄새가 나거나 지정폐기물, 위험 등의 글자가 적힌 경우도 많다"고 했다.

지난 16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전국시멘트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모습. 사진 최병성 목사

지난 16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전국시멘트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모습. 사진 최병성 목사

그러다 보니 시멘트대책위원회는 시멘트에 쓰는 폐기물 연·원료를 줄이고 배출가스 규제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은 최병성 환경운동가(목사)는 "공장 주변 환경 피해 상황이 심각한데 정부는 폐기물 처리가 급하다는 이유로 시멘트 연료를 폐기물로 적극 대체하는 탄소중립안까지 내놨다.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 싶어서 대책위원회를 꾸리게 됐다"면서 "향후 중앙 정부에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소송·고발 등 법적 조치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멘트 업계가 쓰는 폐기물량은 수치상 크게 늘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에 따르면 시멘트 회사의 폐합성수지 연료 사용량은 2015년 68만8382t에서 지난해 140만6828t이 됐다. 5년 새 두 배로 급증한 것이다. 시멘트 생산량 대비 폐기물 사용량도 꾸준히 올라 지난해 17%로 최대치를 찍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반면 탄소 배출이 많은 시멘트 업계 특성상 폐플라스틱 등을 태우는 게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거세다. 순환자원, 이른바 유연탄을 대체할 폐기물 사용을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일의 폐기물 연료 대체율은 68.9%에 달하지만, 국내선 24%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안 되면 에너지 회수가 차선책이다. 합성수지를 태우면 유연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크다"라면서 "시멘트 공장 소성로에서 폐기물 소각과 시멘트 생산을 동시에 하니 두 번 태울 거 한 번만 태우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폐기물 상당량을 시멘트 공장이 도맡아 처리해주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시멘트 회사에서 활용한 폐기물을 모두 합치면 807만8450t에 달한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의 연간 반입량 300만t의 3배 가까이 소화해주는 셈이다. 2019년 폐기물 20만t이 쌓여 문제가 된 '의성 쓰레기산'을 해결한 것도 시멘트 공장이다. 국회 관계자는 "시멘트 업계서 폐기물을 안 받으면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렇다 보니 시멘트 업체들은 일부 주민·환경단체의 주장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탄소중립 방향에 맞춰 배출가스를 줄이려 노력하는 중인데, 유독 국내에서만 '폐기물'이란 단어 때문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유해물질이 늘었다는 주장에도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질소산화물 기준이 높은 건 맞지만, 황산화물 등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다른 물질 기준치는 여타 업계보다 낮고 배출량도 적은 편이다. 총 오염물질을 5년 동안 35% 줄였고, 중금속 총량은 그대로거나 줄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이 한국환경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시멘트 공장 굴뚝에 설치된 자동측정장치(TMS)의 질소산화물 수치는 대부분 기준치(270ppm) 이하로 나왔다. 국립환경과학원이 7월 단양 등 시멘트 공장 근처를 조사했을 때도 폐기물 연료 사용량과 질소산화물ㆍ염화수소 배출 농도는 유의미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시멘트 제조시설 내부. 중앙포토

시멘트 제조시설 내부. 중앙포토

주민과 환경단체 등도 할 말은 있다. TMS가 달린 굴뚝 외에 다른 굴뚝이나 공장 틈새로 유해물질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수치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염물질 허용 기준이나 법령 적용도 다른 업종보다 느슨하게 설정됐다고 지적한다. 대기 오염뿐 아니라 폐기물을 사용한 시멘트 제품의 중금속 오염 등도 우려한다. 지난해 강원대병원 연구팀은 시멘트 공장 근처 거주 시 폐엔 이상 없어도 분진에 노출된 기관지 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기도 했다.

이렇게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만큼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와 폐기물 처리 업체 등도 끼어 있어 구도는 더 복잡하다. 정부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시멘트 연료를 폐플라스틱 등으로 전환하는 목표를 명시했다. 향후 화석연료 대신 순환자원을 더 쓰자고 적극 장려하는 편이다.

반면 폐기물 처리 업체는 시멘트 공장의 폐플라스틱 등 사용량이 늘어나는 게 달갑지 않다. 자신들의 역할이 줄어드는 게 크다. 폐기물 업계 관계자는 "폐기물 중 오니(슬러지)는 중금속이 얼마나 함유됐고, 인체에 치명적인지 등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폐기물을 시멘트 연료·원료로 쓰려면 검증된 것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코로나발 배달 주문 증가 등으로 생긴 스티로폼들이 쌓여있다. 뉴스1

지난 8월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코로나발 배달 주문 증가 등으로 생긴 스티로폼들이 쌓여있다. 뉴스1

그나마 폐기물을 시멘트 공장에서 아예 안 태울 수 없다는 데는 다들 공감하는 편이다. 다만 '적정선'이 어딘지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염물질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민 걱정을 덜어줄 방안도 마땅치 않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질의가 여럿 나왔지만, 대기오염을 줄여주는 선택적 촉매 환원설비(SCR) 의무화 등이 실현되기까진 난관이 많다.

결국 시멘트 공장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사용 가능한 폐기물 종류 등을 규정할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환경부 관계자는 "폐기물 사용량과 질소산화물 배출량 간의 상관관계는 없다"면서도 "시멘트 사업장 질소산화물 배출허용량은 단계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여러 우려를 고려해 폐기물을 사용한 시멘트 제품 내 중금속 정보 공개도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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