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라쿠배.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꼽히는 네이버ㆍ카카오ㆍ라인플러스ㆍ쿠팡ㆍ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등 5대 IT 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연봉 높고 복지제도 좋은 회사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네카라쿠배는 ‘기회’와 ‘성장’의 아이콘이다. 이들 기업의 조직 문화나 인사ㆍ평가ㆍ보상 방식은 이제 ‘삼현에엘’(삼성전자, 현대차, SK, LG)로 불리는 전통 대기업들도 참고하는 모델이 됐다. 중앙일보 팩플이 5개 기업의 HR(Human Resources) 임원들을 만났다.
문제해결하고, 도전하는 인재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이들은 진취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는 인재를 영입 1순위로 꼽았다. 네이버 황순배 HR 책임리더는 “변화와 경쟁을 즐기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재에게 기회가 많은 회사”라고 말했다. 같은 회사 강새봄 기업문화ㆍ제도 담당 리더는 ”이해진 창업자보다 라인 주식을 더 많이 받은 신중호 대표 사례처럼, 창업자처럼 일하면 창업자처럼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경은 쿠팡 인사 담당 상무는 “주어진 일만 잘해서는 안 되고, 비현실적으로 높게 잡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남다른 시도를 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인재를 찾는다”며 “채용 과정에서도 그렇게 일해본 경험이 있는지 본다”고 소개했다.
‘카카오스러움’을 혁신 비결로 꼽는 카카오는 인재의 조건을 ‘길본동주선’으로 요약한다. 양재희 카카오 인재영입팀장은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본’질을 생각하고, ‘동’료의 생각이 옳을 수 있음을 믿고,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며, 세상을 ‘선’하게 바꾸려 노력하는 인재”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메신저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플러스 주정환 HR 총괄도 “승부욕과 투지를 갖추되, 실패해도 금세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인재의 조건으로 꼽았다.
이런 인재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은 기업마다 조금씩 달랐다. 성과 평가를 ‘리뷰’로 부르는 네이버는 동료 10명 안팎으로부터 서술형 피드백을 받는 다면평가를 한다. 2015년부터는 평가 등급제도 아예 없앴다. 반면, 우아한형제들은 서술형평가를 하되, 상위 조직장이 정성평가를 한다. 2018년부터 이 회사 HR을 맡은 변연배 우아한청년들 부사장은 “상급자 평가는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은 쿠팡 상무는 “평가 시스템을 매년 개선한다”며 “목표 달성 과정을 잘 살피기 위해 최근엔 정성평가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산된 점을 감안해 평가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라인은 지난해 8월부터 기존 연1회 평가에서 수시평가로 전환했다. 주정환 HR 총괄은 “직원들이 수시로 성과를 기록하고 이에 대해 팀장과 팀원이 피드백을 줄 수 있는 P토크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소통은 수평적, 실행은 수직적”
네카라쿠배는 소통과 정보공유를 기업문화 전반에서 강조했다. 카카오는 타 부서의 업무 내용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공유’ 문화를 추구한다. 정보를 폭넓게 공유하는 게 소통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네이버도 커넥트데이 등 최고 경영진이 주요 의사결정 배경을 직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갖는다.
그러나 이들 기업에선 수평적 소통이 혼란이나 비효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사결정 전까지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지만, 한번 결정되고 나면 철저히 수직적으로 따르는 문화다. 배민은 합의된 규율 내 자율성을 추구하는 ‘규율 위의 자율’을, 쿠팡은 ‘15가지 리더십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다. 라인도 ‘커뮤니케이션은 수평적. 의사결정은 수직적’이라는 업무 원칙을 두고 있다.
“더더더” 외치는 MZ와 해법은
기존 대기업 기준으론 파격적인 문화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더더더’를 외치는 목소리도 높다. 지금의 보상과 소통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직원들은 회사 성과가 더 직접적으로 내 보상과 연결되길 바라고, 중요한 의사결정에 더 직접 참여하길 원한다. 올해 초 네이버ㆍ카카오 등에서 성과 보상과 평가를 두고 직원 반발이 커진 게 대표적이다. 이해진ㆍ김범수 두 창업자까지 직접 나서서 직원들과 소통하고 내부에 제도 개선 TF를 만들어 급한 불을 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최근 진행 중인 회사와의 단체 교섭에서 인센티브 기준 공개를 요구했다. 네이버는 조직을 이끄는 책임리더에게 업무 지휘와 평가, 인센티브ㆍ스톡옵션 부여 권한 등을 준다. 이 때문에 ‘위계에 의한 괴롭힘’도 가능하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카카오는 보상과 평가 체계 개선을 위해 ‘길 TF’를 운영 중이다. 카카오 노조 소속 한 직원은 “자기 주도성을 발휘하기 위해선 결정 과정을 함께 해야하는데 카카오 구성원들이 과연 회사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HR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란과 갈등은 당연한 성장통으로 보고 각 기업의 특성에 맞는 해법을 찾으라고 제안한다. 김상준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성공한 스타트업을 보면 기업 이론(Corporate Theory)이라 부를 정도로 각 기업별 기업문화를 정립한다”며 “네카라쿠배로 불리는 한국 IT 대기업도 그런 이론이 나올 만하고, 그래야 100년 기업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