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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찰, 형사상 면책보다 내부 쇄신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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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2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창룡 경찰청장(왼쪽)이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임현동 기자

지난 2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창룡 경찰청장(왼쪽)이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임현동 기자

직무 수행 시 ‘형사상 면책’ 법안 국회 통과

섣부른 면책은 위험 … 물리력 적정선 찾아야

어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경찰관의 형사상 면책조항을 신설(제11조 5항)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동안 경찰관의 직무수행에 대한 민사상 면책 규정은 있었지만 형사상 면책은 처음이다. 이 법안이 법사위를 거쳐 다음 달 9일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경찰관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타인의 신체에 피해를 줬더라도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 구조하기 위해 불가피했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면 형사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는다. 사건 현장에서 과잉 진압 시비와 함께 벌어지는 직권남용·직무유기·독직폭행·주거침입 등 형사적 책임 논란과 부담감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한 직접적 효과로 경찰관의 적극적인 물리력 행사가 가능해져 추락한 공권력을 바로 세울 수 있으리라는 점이 꼽힌다. 형사적 면책 규정의 부재는 경찰의 적극적 범죄 대응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자 ‘범법자에게 매맞는 경찰’을 양산하는 주요인으로 거론돼 왔다. 개정안은 올해 초 ‘정인이 사건’ 때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음에도 현장 경찰관이 주거침입죄와 재물손괴죄 등으로 고발될 것을 우려해 소극적 대처에 머물러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에 따라 추진됐다.

그러나 법안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가장 우려하는 건 면책 규정을 등에 업은 경찰의 직권남용 문제다. 가뜩이나 현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의 여파로 1차 수사종결권 확보, 국가수사본부 발족 등 경찰 권한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강력범죄 대응을 명분으로 경찰봉·테이저건·총기 등의 사용 권한은 물론 형사상 면책 범위까지 대폭 확대되는 것이라서다. 정당한 법 집행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사건 현장에서 감정이 격해져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든 인권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사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산 ‘인천 흉기 난동’ 사건, ‘스토킹 신변보호자 살해’ 사건 등에서 드러났듯이 경찰 부실 대응은 법 규정이나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다. 경찰청이 2019년 제정한 ‘경찰관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흉기 난동 사건에서 출동 경찰관은 총기를 사용했어도 규정 위반이 아니었지만 현장을 이탈했다. 훈련 부족에 따른 현장 대처 능력 부재, 투철한 직업정신과 사명감 결여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형사적 면책 법제화보다 더 시급한 건 경찰의 근본적인 ‘내부 쇄신’이다. “당장 이슈가 된 현상만 해결하려고 하기보단 정신·신체·인권의식을 두루 갖춘 경찰관을 선발하고 훈련시켜야 한다”는 전문가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일선 경찰관들은 사후 감찰·징계 등 뒤탈을 우려해 현장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인권단체들은 과도한 물리력 행사의 폐해를 우려하며 맞서는 상황에서 물리력 행사의 적정선을 찾는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