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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남용하면 당뇨병 발병 위험 16% 높아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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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항생제가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항생제를 오래 쓰거나 여러 개 쓰면 그런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팀(박선재·박영준 연구원)은 2002~2015년 건강보험 진료 데이터를 활용해 40세 이상 20만1459명의 항생제 사용과 당뇨병 상관관계를 추적 조사했다. 2002~2005년 항생제 사용 여부가 2006~2015년 당뇨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2002~2005년 항생제를 90일 이상 사용한 그룹은 미사용 그룹보다 당뇨병 발생 위험이 16% 높았다. 또 항생제를 5가지 이상 사용한 경우 한 종류만 사용한 그룹보다 당뇨병 발생 위험이 14% 높았다.

박영준 연구원은 “항생제가 우리 몸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장내 미생물군이 균형을 이뤄서 생태계(장내 미생물 균총)를 유지하고 있는데, 항생제가 미생물을 죽이면 이 생태계가 무너진다. 박 연구원은 “미생물 균총이 몸에 들어온 음식과 식이섬유를 발효시켜 ‘짧은 사슬 지방산’을 만든다. 이 지방산의 균형이 깨지면 내당능 장애가 생기고 인슐린 저항성이 올라가 결국 당뇨병이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몸에는 혈당을 낮추는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이 고장 난 게 내당능 장애로, 당뇨병 전 단계로 불린다. 인슐린 저항성이 올라가면 당뇨병이 생긴다. 당뇨병은 신부전·심혈관질환 등 여러 합병증을 유발한다. 국내 성인 7명 중 1명이 앓고 있다. 당뇨병 이전 단계인 공복혈당장애 인구는 약 1440만명이다.

박상민 교수는 “대규모 아시아계 성인을 대상으로 항생제와 당뇨병 관계를 분석한 최초의 연구”라며 “국내의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당뇨병에 영향을 주는 음주·흡연 등의 요인을 걸러내고 정교하게 분석했다.

지난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1일 항생제 사용량은 26.1DID(하루 1000명당 의약품 사용량)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그리스, 터키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박영준 연구원은 “항생제를 안 쓸 수 없는 만큼 꼭 필요한 양만 쓰고 여러 계열을 쓰지 않아야 한다”며 “의사가 좀 더 책임 있게 처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민 교수는 “항생제의 득실을 고려해 신중히 처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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