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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1세대, 국산 소총 M16 최초로 만든 도미(渡美)기사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SNT모티브 생산품을 견학하는 도미 기사들. [사진 SNT모티브]

SNT모티브 생산품을 견학하는 도미 기사들. [사진 SNT모티브]

국산 소구경 화기인 M16을 처음 만들며 1970년대 대한민국 자주국방 1세대로 활약한 이른바 ‘도미(渡美)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구경 화기 제조업체인 SNT모티브(부산 기장군 철마면)가 국내 거주 도미 기사 10명과 그 가족 6명을 초청해 감사패와 선물을 주는 등 ‘영웅’으로 대우하면서다.

도미 기사는 197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총기 관련 기술을 배워 귀국한 뒤 1973년 설립된 조병창(造兵廠, SNT모티브 전신)에서 국산 소총인 M16을 만드는 등 자주국방 토대를 닦은 기술자를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 개인화기를 제조하고 기술을 보유한 나라로 자리매김하는데 초석을 마련한 이들이다.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 출생자로 지금은 80세 전후의 고령이 됐다.

기념 촬영하는 도미 기사. [사진 SNT모티브]

기념 촬영하는 도미 기사. [사진 SNT모티브]

1960년대 말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국방부는 “우리 손으로 우리 무기를 만들자”는 자주국방 기치 아래 조병창을 만들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71년 ‘M16 소총 제조공장 도미 훈련기사 모집’을 했다. 공대 기계과 졸업, 군필자, 기계 관련 분야 경력 5년, 미국인 기술자와 30분 이상 영어로 대화 가능한 자 같은 엄격한 자격요건에도 전국에서 1800여명의 공학도가 응시했다. 국방부는 이들 가운데 27명을 ‘도미 기사’로 뽑았다. 이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총기 제작사인 콜트(Colt)에서 1972년 3월부터 73년 1월까지 기술연수를 받았고, 귀국 후 1973년 11월 29일 설립된 조병창에서 M16 소총과 국산 K시리즈 화기를 개발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SNT모티브는 조병창 설립일을 기념해 29일 도미 기사를 초청했다.

핸드 프린팅을 남기는 도미기사. [사진 SNT모티브]

핸드 프린팅을 남기는 도미기사. [사진 SNT모티브]

SNT모티브는 이날 부산 농심호텔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초청한 도미 기사 10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공로를 인정했다. 이어 SNT모티브 방산 공장으로 초청해 ‘핸드프린팅’ 기념 조형물을 만들고, 소총 생산 초기 당시 공장 설립 과정과 장비 도입 과정 등 비사를 소개하고 도미 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미 기사들은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당시 무기 개발과 생산 과정이 담긴 사진과 노트, 메모 등 물품을 SNT모티브에 기증했다. SNT모티브는 회사 안에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도미 기사 기증 물품을 영구 보존할 계획이다.

도미 기사 대표 강흥림(83) 씨는 “국산 무기가 전무하던 70년대 초 돈도 기술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가 총기 기술을 배워왔고, 이 기술로 국방부 조병창에서 유사 이래 첫 국산 소총을 생산하면서 자주국방 토대를 마련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우리가 갈고 닦은 총기 제조기술이 우리나라 정밀기계공업 기초가 되는 역할을 했기에 도미 기사 모두가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명록을 작성하는 도미 기사. [사진 SNT모티브]

방명록을 작성하는 도미 기사. [사진 SNT모티브]

박문선 SNT모티브 특수사업본부장은 “회사가 소총·권총·기관총·저격용 소총 등 모든 제품군(Full Line-up) 소구경 화기 제조업체로 성장한 근간에는 조병창 시절 도미 기사의 땀과 노력으로 쌓은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대한민국 자주국방 1세대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기 위해 초청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당시 도미 기사 27명 가운데 캐나다·중국 등 해외 거주자가 있는 데다 지금은 고령이 되는 바람에 정확한 생존 인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73년 설립된 조병창은 81년 민영화되면서 대우정밀로 바뀌었다가 2006년 9월 다시 SNT모티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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