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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달리 '대출이자' 빠진 물가지수…통계청·한은 갈등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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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집값이 급격히 오르면서 소비자물가지수에 대출금 이자와 세금 등의 비용 같은 ‘자가주거비’를 반영해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물가와 정부가 발표하는 수치 간의 괴리가 워낙 커서다. 하지만 물가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적용이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한국의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29일 통계청·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그간 학계에서는 가계 소비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가주거비’가 주거 서비스의 가격인 만큼, 소비자물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 이런 목소리가 커진 것은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이 공개되면서다. 금통위에서 최소한 4명 이상의 금통위원들은 자가주거비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아 체감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자가주거비 반영시 물가상승률 치솟아

현재 통계청에서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전·월세 비용만 포함돼 주택 구입에 대한 생활비 부담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금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등 주택을 소유하는 데 쓰이는 비용이 존재하는 만큼 ‘자가주거비’를 따로 측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실제 미국ㆍ독일ㆍ일본ㆍ노르웨이ㆍ덴마크 등 주요국은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하는 데 자가주거비를 반영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를 포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폭등한 점을 고려하면, 자가주거비를 반영할 경우 한국의 물가 상승세가 더욱 가파르게 나올 수 있다. 예컨대 지난 10월 국내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2%가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미국은 전년 동월 대비 6.2%가 올랐다.

3%포인트에 이르는 한ㆍ미 물가 착시는 주거비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국의 물가 측정에서 제외되는 자가주거비를 고려하면 체감물가는 2%대를 넘어 4%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짚었다.

국민연금·최저임금 등 연쇄 파장

하지만 자가주거비를 소비자물가에 반영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많다. 우선 소비 지출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시기에 소비자물가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 소비자물가는 단순히 인플레이션 지표의 기능뿐 아니라 국민연금 지급액, 최저임금 결정 등 다른 국가정책의 준거로도 활용된다. 다른 경제부문으로의 연쇄적인 파장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또 물가를 낮추려고 금리를 올렸는데, 이에 따라 주거비가 올라 물가가 상승할 수도 있다. 통화정책 의도와 물가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기초자료를 적시에 입수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측정 방법에 따라 추정치 간 차이도 크다는 점도 제약으로 꼽힌다.

훌쩍 높아진 물가 상승률 전망.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훌쩍 높아진 물가 상승률 전망.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소비자물가에서) 자가주거비를 빼놓고 보는 것은 안 맞지 않느냐는 지적에 공감한다”면서도 “실제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고 있다”고 밝힌 배경이다.

통계청 “한은, 오해 발언 자제해달라”

한편 소비자물가자수 산정과 관련한 발언을 놓고 통계청과 한국은행 간의 갈등도 감지된다. 생산자물가지수ㆍ수출입물가지수는 한국은행이, 소비자물가지수는 통계청이 생산하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는데, 최근 한은에서 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면서다. 통계청 내에서는 한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의 명분을 쌓기 위해 체감물가 상승 요인을 집중 부각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비자물가지수 작성 주체가 통계청인데, 마치 한은에서 작성하는 것처럼 오해되는 발언들이 있었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실무진에서 한은에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 “공공기관끼리 갈등이 있던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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