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초초대형 하나로 ‘빅뱅’…응급의사가 보는 병원의 미래

중앙일보

입력 2021.11.29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85)

10년 후, 50년 후, 100년 후 병원의 모습은 어떨까? 내가 지금 근무 중인 병원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30년 전 코흘리개 시절 동네 의원이 지금은 없는 것처럼) 무려 1000개가 넘는 병실을 운영 중인 커다란 병원이 없어진다는 걸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50년, 100년 후엔 명맥 유지가 고작이지 않을까 싶다.

유명한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지금도 몸집을 불리고 있듯, 미래엔 점점 더 큰 규모의 병원이 들어설 것이다. 그렇게 작은 병원은 점차 사라진다. [사진 Wikiemia Commons]

유명한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지금도 몸집을 불리고 있듯, 미래엔 점점 더 큰 규모의 병원이 들어설 것이다. 그렇게 작은 병원은 점차 사라진다. [사진 Wikiemia Commons]

“앞으로 병원은 이런 시대가 온다.” 언론에 종종 묘사되는 병원의 모습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렸다. 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다. 상상력도 현실을 알아야 발휘되는 법. 미래 의료는 보통의 예상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 방향이 옳냐 그르냐는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앞으로 일어날 변화만 얘기코자 한다. 일단 대한민국은 결코 현실에 안주해 역사를 멈춰 세우는 일은 없을 테니까.

초초대형 병원이 생겨날 것이다. 서울 유수의 대형병원이 지금 이 시각에도 몸집을 불리고 있듯, 점점 더 큰 규모의 병원이 우후죽순 들어설 테고 작은 병원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국가 주도로, 남아있던 대형병원은 하나로 통합될 것이다. 초초대형 병원의 탄생이다. 틀림없다. 우리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반드시 최고만을 쫓을 테니까.

병원의 규모는? 전국의 입원환자를 모두 감당할 정도로 클 것이다. 입원실만 얼추 10만 개를 넘어설 것이다. 위치는 당연히 서울일 텐데, 어쩌면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근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서울시민의 시야 밖에 위치하진 않을 것이다. 이름은 서울대나 한국대 정도를 차용할 가능성이 큰데, 설립과정에서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면 삼성 정도의 이름을 쓰는 것도 진지하게 논의될 것이다.

과연 전국에 병원이 하나만 있어도 될까? 물론이다. 지금 이야기하는 건 먼 미래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물리적 거리가 한없이 가까워진. 전국 어디든 1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한 시대의 이야기다. 그때쯤엔 인간의 오감을 기계로 전달할 수 있게 되어, 어지간한 진료는 모두 원격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시골구석까지 원격진료가 보편화 된다는 이야기다. 경증은 집에서 진료받고, 중증은 1시간이면 초초대형 병원으로 이동해 진료받는 세상. 굳이 여러 개의 병원이 있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지금도 사람들은 가장 큰(좋은) 병원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으며, 얼마가 들더라도 병원만큼은 큰 곳으로 가야 하며, 다른 건 몰라도 의료만큼은 돈에 따른 차별이 없길 바란다. 그러니 미래에 자원이 집중되고 거리의 제약이 사라진다면 결과는 명약관화. 모두가 똑같이 똑같은 병원에서 똑같은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병원은 반드시 나라와 관료가 주도하게 될 테고, 병원장 자리는 아마도 대통령이 겸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의사의 탐욕을 억제해 줄 조직이 만들어지고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져 실질적인 평등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마지막까지 지방에 남아있는 의료기관은 아마도 응급실일 것이다. 1시간을 견디기 힘든 중증 응급 환자의 처치를 맡을 기관이다. [사진 Pixabay]

마지막까지 지방에 남아있는 의료기관은 아마도 응급실일 것이다. 1시간을 견디기 힘든 중증 응급 환자의 처치를 맡을 기관이다. [사진 Pixabay]

당연히 모든 의사는 그 병원에 소속되어 근무하게 될 것이며, 당연히 모든 환자가 그 병원에서 진료받게 될 것이다. 누구나 공정한 진료를 받기 위해, 의사들 명찰에서 이름이 삭제되고 대신 의사1, 의사2, 교수1, 교수2 등 직함만 몇 가지 남을 것이다. 모든 의사는 AI의 지시에 따라 최상의 일률적인 진료를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제공하게 될 텐데, 따라서 의사 개개인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녀노소 빈부 격차와 관계없는 공정한 진료가 현실이 될 테니까. 지나친 평등의 추구로 의료의 질이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기계는 감정이 없다. 주어진 업무를 알고리즘에 따라 수행할 따름이다. 더구나 그것은 인간보다 뛰어난 AI의 최적화된 진료다. 모든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가 제공되는 이상이 실현되는 것이다. 의사란 직업은 AI의 대리인에 불과하게 될 것이고.

그때, 마지막까지 지방에 남아있는 의료기관은 아마도 응급실일 것이다. 1시간 거리를 견디지 못할 중증 응급 환자의 처치를 맡을 기관이다. 그때도 만약 내가 현역이라면, 나는 십중팔구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는 점점 쪼그라들어 인구가 얼마 남지 않았을 테고, 모든 게 낙후되어 소멸이 멀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곳에서 내 이름을 명찰에 달고 피치 못해 나를 찾는 몇몇 응급환자에게 메스를 들이대고 있을 것이다. 광역시쯤 되는 격오지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환자의 응급처치를 서둘러 마치고, 시속 1만km 기차에 환자를 태울 것이다. 철마는 환자를 가득 싣고 초초대형병원으로 출발할 테지. 이송하는 동안 그들을 보살피는 객실 내의 의사는 아마도 의사3, 의사4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환자 상태를 인수인계하며 이렇게 슬쩍 물어보고 있을 것이다.

“혹시 병원에 빈자리 나면 꼭 좀 연락해주세요. 저도 아직 쓸만한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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