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마을 수호신이었던 느티나무가 전하는 지혜

중앙일보

입력

어느새 2021년 달력도 2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날씨도 꽤 쌀쌀해져서 두툼한 옷을 꺼내 입고 다니게 됐죠. 11월에는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입동(立冬)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라는 절기가 있어서 정말 겨울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하는 때이기도 해요.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에게 겨울은 혹독한 때입니다. 겨울을 잘 살아남아야 이후 새로운 해를 이어갈 수 있지요. 풀은 한 해 동안 열심히 만들어낸 몸체를 시들게 하고 이듬해 새롭게 뿌리에서 새싹을 내거나 씨앗에서 새싹을 내며 자랄 궁리를 합니다. 하지만 나무는 한 해 동안 애써 만든 것들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이어가서 체격을 불리고 키를 키우고자 하죠. 그래서 겨울눈을 만들어서 땅이 아니라 가지 끝에서 새해를 시작하고, 단단한 몸으로 체격을 키우고 버텨갑니다. 이런 식으로 나무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에 가장 커다랗고 오래 사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커다랗고 오래 산다는 것은 아주 좋은 장점이고 매력입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나무의 그런 모습에 놀라고 섬기는 마음까지도 갖게 됐어요. 나무는 여러모로 우리 인간에게 선물을 줍니다. 산소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열매와 목재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한여름 무더위를 피할 그늘을 제공해주지요.

예전에는 동네마다 쉬어가는 커다란 정자와 같은 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습니다. 정자나무 혹은 당산나무라고 불린 이러한 자격은 모든 나무에 주어지지는 않았어요. 일단은 오래 살아야 합니다. 당산나무는 일종의 마을 수호신인데 얼마 못 살고 죽으면 안 되겠지요? 또 크게 자라야 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크기가 작다면 기대고 싶은 맘이 적겠지요. 수형(나무 모양) 또한 아름다워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을 두루 갖춘 나무는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은행나무,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이 일단 그런 나무에 속하죠.

그중 우리나라에 많이 심어지고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바로 느티나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느티나무에 대한 기억과 정서가 남아있어요. 무심코 나무를 그리라고 한다면 느티나무와 같은 모양을 그려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느티나무는 도심에서도 가로수로 많이 심어집니다. 나무를 잘 모르는 사람도 느티나무 정도는 알아채곤 하는데요.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해왔고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줘왔던 느티나무에 대해서 몇 가지 물으면 대부분 당혹스러워합니다. 소중 독자 여러분은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는지 한번 보세요.

"느티나무 꽃을 본 적이 있나요?"
"느티나무의 열매를 본 적이 있나요?"
"이파리가 비대칭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느티나무는 어떻게 씨앗을 멀리 보낼까요?"

자연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외에 이런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변에 많이 있어도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느티나무의 꽃과 열매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꽃이 크고 화려하지도 않고, 열매를 따 먹지도 않죠. 우리의 삶에 바로 활용되지 않기 때문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느티나무도 식물이므로 꽃이 피고 열매도 맺죠. 봄이 되면 느티나무 근처에 가서 꼭 꽃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열매는 지금 이 시기에도 볼 수 있어요. 느티나무 열매는 2~3mm 정도로 아주 작고 울퉁불퉁하게 생겼습니다. 메밀이라는 곡식이 있는데 크기와 모양이 거의 비슷해요. 특히 놀라운 건 느티나무의 번식 방법입니다. 날개나 솜털이 있어 바람을 타고, 갈고리나 끈적이가 있어 동물 털에 붙어 가고, 맛 좋은 과육을 가져서 동물이 먹고 멀리 가서 배설하게 하는 것 등이 흔히 알려진 식물의 번식 방법이죠. 아니면 봉숭아나 콩처럼 톡 터지면서 튀어 나가거나요.

이런 유형 중 딱히 어디에도 속한 것 같지 않은 느티나무는 도대체 어떻게 자기 씨앗을 멀리 보내는 걸까요? 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굳이 새로운 모양으로 씨앗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와 씨앗은 그대로 두고 이미 자신이 가진 이파리를 이용해서 날아가는 거죠. 느티나무는 열매가 달린 가지가 다른 가지에 비해 좀 가늘고 약합니다. 그리고 그 가지에 대여섯 장의 잎이 달려있죠. 바람이 불어올 때면 가지가 똑 부러지면서 열매를 달고 바람에 날아가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늦은 가을바람이 부는 날, 느티나무 아래 서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나둘씩 뱅그르르 돌면서 날아가는 가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느티나무의 지혜를 본받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굳이 멀리서 답을 찾지 말고 바로 내 안에서 그 답을 찾아내 보면 어떨까요?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