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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박정희·전두환 후예의 고해성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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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 사람을 떠올렸다. 따뜻하고 수려한  정치학도 김동관.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해 1980년 5월의 광주에 특전사 진압요원으로 투입됐다.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실을 끝없이 자책했고, 정신병원에서 한평생 투병 중이다.

민주주의를 열망한 전성. 광주유혈진압 항의 시위를 주도해 구속됐다. 세 차례 징역을 사는 동안 꽃 같은 청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학과 동기인 친구 김동관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고도 경제성장의 공 뚜렷하지만
자유 없는 야만의 시대 반성해야
주류였던 보수가 먼저 달라져야
진보의 비민주적 오류 고쳐질 것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5·18 광주유혈진압은 평탄했던 두 사람의 운명에 불쑥 개입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어찌 이들뿐인가. 전두환 정권은 “독재정권 타도”라는 사실에 입각한 양심적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대학생 1000여 명을 한날 한시에 구속했다. 박종철과 이한열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투옥과 고문, 의문사를 포함한 인권유린이 일상이 됐다. 보도지침은 언론의 자유를 질식시켰다. 자유가 없는 노예의 삶을 강요한 야만의 시대였다.

생전의 전두환은 일체의 사과를 거부했다. 사후(死後)에 부인이 “남편의 재임 중 고통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그나마 임기 시작(1980년 9월 1일) 이전의 일인 5·18에는 침묵했다.

그럼에도 공(功)은 부인할 수 없다. 성장·물가·국제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실현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해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단임(單任)을 결단해 민주화 수순을 밟았다.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면서 전권을 준 것은 성공적 권력 위임의 백미(白眉)였다.

박철언을 수석대표로 임명해 30여 차례의 남북 비밀회담도 했다. 박철언은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보아 훗날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 가능했다”고 했다. 정통성 부재(不在) 콤플렉스를 성과로 만회하려 했다.

하지만 5·18 앞에서는 이성적 판단의 작동이 멈췄다. 책임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래서는 피를 나눈 자국민을 향해 총질을 한 치명적 범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

보수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진보에서는 박정희·전두환의 과(過)를 비판하지만 공도 대체로 인정한다. 그러나 보수에서는 과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한다. 독재와 인명살상, 인권유린의 후유증이 여전한데 애써 외면한다. 오직 경제성장 신화(神話)만 강조한다. 팩트는 하나인데 두 개의 기억이 존재하는 라쇼몽의 상태를 만들고 있다.

한국은 지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선진국이 됐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5위의 기술 강국이다. K콘텐트는 세계를 정복했다. 이제부터의 경쟁 상대는 만만한 후진국이 아니다. 힘이 센 선진국인 미국·유럽·일본이고, 거대한 중국이다. 이들과 겨루려면 탄탄한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내부의 에너지를 모으는 통합은 필수다. 그래야 경제도, 문화도, 외교도, 안보도 일류가 된다.

오늘을 만들어낸 주역인 보수가 달라져야 한다. 독재시대의 잘못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광주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야 통합이 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유족이 이미 모범을 보였다. 박정희·전두환의 후예가 역사 화해의 무대에 합류해야 한다. 그러면 두 사람의 독재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비민주적 오류를 정당화해 온 586 진보 세력의 오만도 사라진다.

김수영 시인

김수영 시인

진보·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서 수장(水葬)될 뻔 했고, 전두환 정권에서 사형 집행 직전까지 갔다. 미국의 구명(救命)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자 원수를 용서하고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했다. 박정희의 오른팔 김종필을 총리로, 전두환의 참모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중용했다. 이젠 박정희·전두환 지지자들이 민주화 세력의 고통에 속죄하고,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독재의 강을 건너야 자폐(自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은 섬나라였다. 프랑스에서 선포된 68운동의 “금지함을 금지하라”는 지상명령은 유럽·미국·일본, 심지어 남미까지 점령했다. 평등·성해방·인권·공동체주의·생태주의의 황홀한 세례를 한꺼번에 내렸다. 독일에서는 전후에 총리까지 배출했던 나치가 비로소 청산됐다. 그러나 우리의 반공독재 왕조는 이 통과의례조차 봉쇄했고, 심각한 문화지체의 후유증을 지금도 겪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자유인의 초상(肖像)’ 김수영이 있다. 그는 식민지와 전쟁 포로, 좌절된 혁명의 몸서리를 견뎌내고 이 척박한 불모의 땅에서 인간의 위엄을 사수한 전사(戰士)였다.

김수영은 지금도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1958년 ‘비’)라고 묻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후예(後裔)의 고해성사 거부를 예견이라도 한 듯 마구 꾸짖고 있다.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는 허상의 노예들에게 동굴에서 나와 광야의 자유를 숨쉬라고 명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