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편 가르기 증세 아닌 보편 증세해야 불평등 준다

중앙일보

입력 2021.11.29 00:35

업데이트 2021.11.29 00:52

지면보기

종합 29면

비겁한 상위 2% 프레임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오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사회 갈등 요인은 불평등이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양극화로 이어진다. 사회의 한쪽 끝에는 부자가, 다른 쪽 끝에는 가난한 자가 있고 중산층은 사라진다. 정치적 주권은 N분의 1인데 경제력은 집중되니 사회가 불안정해진다.

대선 주자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대한민국 위기의 원인을 불공정과 양극화에서 찾았다. 윤석열 캠프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양극화가 이번 대선의 키워드라고 지적했다. 양극화를 말로만 걱정하던 지난 20년간 격차는 더 벌어졌고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불평등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인들은 특히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BBC가 34개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설문조사에서 “경제 발전의 과실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80%를 넘긴 것은 한국을 비롯해 포르투갈·이탈리아·일본·터키 등 5개국뿐이었다.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OECD 기준으로 보면 객관적인 한국의 불평등은 평균보다 조금 높은 정도다.

상위 1%가 총 소득세의 41% 부담, 하위 37%는 한 푼도 안 내
소득세 최고세율 8년간 10%p 올라 OECD에서 가장 빨리 증가
부자가 세금 제대로 안 낸다는 생각은 조세 현실과 맞지 않아
불평등 완화 위해 부자 증세하더라도 누진적·보편적 증세로 가야

한국은 이미 부자 증세

불평등은 단순한 부익부 빈익빈보다 훨씬 복잡한 현상이다.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이 다르고, 국가 내 불평등과 국가 간 불평등이 다르며, 빈곤과 밀접하지만 역시 다르고, 세대에 따라 젠더에 따라 가족 구성에 따라 다르다. 불평등은 노동·교육·이민·젠더·세대·가족·조세·의료·주거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한국의 경우 불평등도 문제지만 빈곤이 더 심각하고도 시급하다. 전체 빈곤율은 OECD 5위이고 특히 노인 빈곤율은 압도적 1위다. 소득 불평등이 근로 연령대 사람들의 문제라면 빈곤은 노인들의 문제다. 한국 노인의 43%가 빈곤율 이하의 소득밖에 얻지 못한다. 그러니 불평등 완화는 중요한 의제다. 종부세에서 국토보유세에 이르기까지, 거론되는 주요 정책 수단은 세금이다. 누구에게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걷을 것인가.

한국과 OECD 세금 구조

한국과 OECD 세금 구조

요즘 여권 인사들과 얘기하다 보면 미국 바이든 정부 예산안을 언급하는 경우가 늘었다. 미국도 이렇게 하는데 우리도 부자 증세 하는 게 당연하다는 취지다. 증세를 통해 중산층을 되살리겠다고 공약하고 당선된 바이든 대통령은 부유층과 기업으로부터 2조 달러의 세금을 더 걷어서 기후변화와 사회 정책에 투자하겠다는 예산안을 내놓았다. 협상 과정에서 지금은 절반으로 삭감된 상태이지만, 백 보 양보해서 원안을 보자. 부자 증세의 내용은 이렇다. 연간 1000만 달러(약 120억원) 이상 버는 사람은 현재 37%인 소득세 최고세율에 5%포인트를 더해 42%를 내야 한다. 연간 소득이 2500만 달러(약 300억원) 이상이라면 여기에 또 3%포인트를 더해 45%를 내야 한다.

증세하려면 소득세·부가세 먼저

그런데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이미 45%다. 게다가 적용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도 10억원이어서 300억원 기준인 미국 납세자보다 30분의 1만큼의 소득이 있다면 최고세율을 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소득 격차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부자들이 훨씬 많은 소득세를 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부자 증세의 대상은 납세자 중 상위 0.02%이다. 한국에서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근로자는 1만6000명, 전체의 0.05%이다. 정리하면 한국은 바이든 정부의 획기적인 ‘목표’에 비해서도 이미 소득세 최고세율이 높고 그 고율의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수는 더 많다. 그러니 한국이 바이든 얘기를 할 게 아니라 바이든이 한국 얘기를 해야 맞다.

그 결과 한국의 소득 상위 1%는 전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의 41.3%를 낸다. 상위 5%는 전체의 65.1%, 상위 10%는 77.4%, 상위 20%는 89.0%를 낸다. 상위 5%를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전체 소득의 24.8%를 벌었으나, 세금의 65.1%를 냈다. 반면 조세 미달자, 즉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사람은 전체의 37%인 700만 명이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세통계연보』가 알려준 2020년 통계다. 그뿐인가. 최고세율의 상승 속도도 상상 초월이다. 2012년에 35%였던 소득세 최고세율은 2020년에 45%가 되었으니 8년간 10%포인트 인상이다. OECD 국가 중에 이렇게 빨리 세율이 인상된 나라는 없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전체 세금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세금 구조를 보자. OECD의 『세입통계(Revenue Statistics)』 2020년 판은 전체 세입 중에서 각각의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한국은 전체 세입 중 소득세가 18%(OECD 평균 24%), 부가가치세가 15%(OECD 평균 20%)로 크게 낮다. 반면 법인세 16%(OECD 평균 10%), 재산세 12%(OECD 평균 6%)로 크게 높다. 특히 재산세는 OECD 평균의 2배인데, 이것은 최근의 급격한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어서 실제로는 더 높을 것이다. 증세하려면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증세를 우선 고려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원칙 지켜야

지금까지 제시한 통계들은 대부분 한국인의 상식에 반한다. 부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불로소득을 독식한다는 대중의 분노에도 반하고, 조세의 재분배 기능이 약하고 따라서 불평등이 만연하다는 인식에도 반한다. 왜 그럴까. 부자들의 납세와 불평등의 완화 사이에 숨어있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앞에 제시한 통계에도 잘 드러나듯이 한국의 상층이 결코 세금을 적게 내는 것도 아니고, 한국 세금의 누진성은 OECD 평균보다 높다. 하지만 동시에 재분배 기능이 과거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약한 게 사실이다. 조세 정책의 기본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로 ‘좁은 세원, 높은 세율’의 선택을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상위 1%의 세금을 올린다고 하면 대중은 환호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는 세금만으로는 재분배 기능을 강화할 절대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려면 부자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되 대부분의 국민이 형편에 따라 단돈 100원이라도 납세하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를 채택하고 보편적 증세의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적은 액수일 망정 세금을 더 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이다. 그러니 실제 효과도 없으면서 마치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징적 조세만 남발한다. 부자들은 세금 내고 욕먹고, 서민들은 분명 부자 세금 올린다고 했는데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으니 희망고문 끝에 불신만 쌓인다.

국민 편 가르는 종부세 상위 2% 프레임

종합부동산세 논란이 뜨겁다. 찬반을 떠나서 가장 큰 문제는 이 문제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을 얼마나 더 멀게 만들지에 있다. 종부세 폭탄이라는 프레임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투기와 무관한 일부 납세자들에게 폭탄이 배달된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세수 계산도 틀렸다. 그렇다면 겸허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아무리 급하다지만, 종부세 고지서가 배달된 다음 날 집권당 대표는 26억원짜리 집 종부세가 쏘나타 세금보다 적다고 했다. 본인의 취지가 무엇이었든 세금 고지서를 받아든 납세자에게는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 걸작이었다. “그러니까 자동차세 좀 깎아줘.” 이번에는 집권당 원내대표가 종부세는 무차별 폭격이 아니라 정밀 타격이라고 거들었다. 납세자가 북한 벙커인가 정밀 타격하게. 그러자 청와대 정책실장이 나섰다. 종부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란다. 세상에 정밀 타격 당해서 강제로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있던가.

상위 2% 프레임은 비겁하다. 세금의 합리성을 따지는 것에서 주의를 분산시켜 98%는 무관한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다. 이러면 복지국가의 길은 더욱 멀어진다. 복지국가는 국민 간의 연대에 기초한 사회다. 상위 2% 프레임으로 국민을 편 갈라놓으면 98%도 2%와 연대하지 않을 것이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단 한 사람의 세금이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받고 고마움을 확산시켜야 연대가 생긴다.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부자 증세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선거를 의식한 편 가르기 증세 말고, 사회적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누진적이고 보편적인 증세를 당당하게 해야 한다.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