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선2035

소확행의 진짜 뜻

중앙일보

입력 2021.11.2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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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심새롬 정치팀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소확행이 한국에서 유행한 건 2018년 전후다. 일상에서 비교적 쉽게 느낄 수 있는 ‘작고 확실한 행복’을 챙기자는 움직임에 공감대가 섰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가까운 이웃이나 자연과 교감하는 ‘킨포크(KINFOLK)’ 스타일이 각광받고,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일컫는 워라밸 추구 경향이 생긴 것과 한 맥락이다.

새로운 유행 같지만 소확행을 일컫는 말은 예전부터 세계 곳곳에 있었다.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 등이 꼽히는데 라곰은 ‘적당한’, ‘딱 알맞은’ 균형을, ‘OKLM’으로도 쓰는 오캄은 고요하고 한적하며 느긋한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19세기 덴마크 문학에서 쓰였던 휘게는 가족·친구들과 단란하게 모여 여유를 즐기는 행복의 비결을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한때 불필요한 것을 끊고(断), 버리고(捨), 집착에서 벗어나는(離) 단샤리(斷捨離) 열풍이 있었고 한국은 예로부터 안분지족(安分知足), 중용(中庸)을 중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당내에 소확행 특별위원회를 출범하는 모습. [민주당 유튜브 ‘씀’ 캡처]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당내에 소확행 특별위원회를 출범하는 모습. [민주당 유튜브 ‘씀’ 캡처]

불현듯 소확행 탐구에 이른 건 여당 대선 후보가 ‘이재명의 합니다 소확행 공약’을 열 세개째 발표한 게 계기다. 초등학생 3시 동시 하교제, 공공부문 면접수당 지급 등이 반갑지만 가상자산 과세 유예, 전기차 보조금 확대, 공매도 제도 개선…. 계속 읽다 보면 ‘저게 대체 소확행이랑 무슨 상관인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그냥 보육·청년·경제·산업 공약을 임팩트있게 잘 내면 좋겠다. 막상 이 후보의 중·대형 공약 1호 ‘디지털 대전환’은 기자들이 보기에도 대단히 중후장대해 발표 현장에서 “추상적 주제를 고른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반복되는 소확행 타령이 유권자에게 작은 행복을 찾아주겠다면서 큰 지지율을 얻으려는 표 계산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개인이나 가정·지역사회 차원에서 해결하면 될 생활 속 문제들에 굳이 169석 여당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인상이 짙어서다. 민주당이 1년 전 ‘소확행위원회’를 출범시켜 3대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무거운 박스에 손잡이 설치’를 선정한 건 조금 어색했다. 재작년 총선 1호 공약으로 ‘전국 무료 와이파이’를 내세웠을 때도 반응이 시원찮았다.

선거 홍보 문구로 소확행을 외치는 건 어쩌면 과거 큰 인기를 끈 ‘저녁이 있는 삶’의 벤치마킹 시도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요즘 MZ세대가 ‘소확행=소비가 주는 행복’ 뜻으로도 쓴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소확행이 등장한 해에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무조건 가격이 싼 것을 고르는 ‘가성비’ 대신, 조금 비싸더라도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가심비’를 새 트렌드로 선정했다.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지갑을 열게 하는, 크고 선명한 행복 구상을 기대한다.

모비온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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