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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쉴 수 있나" 지친 2030의료진 '코로나 블랙' 덮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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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선별진료소 종사자 휴게 지원 차량에서 지친 의료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스1

임시선별진료소 종사자 휴게 지원 차량에서 지친 의료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스1

내가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회의감과 일에 대한 의미 상실, 허무함 같은 게 몰려와요. -내과 전공의 3년 차

일을 마치고 집에 가도 쉬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어요. 죽으면 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대학병원 간호사 A씨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요. 제 목숨줄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라. -공중보건의 B씨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세상에 등장한 지 벌써 2년. 팬데믹(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한 의료진의 '심리 방역'에 빨간불이 깜빡이고 있습니다. 지난 1일 단계적 일상 회복, 이른바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이 '조금 숨통이 트인다'는 반응을 보이죠. 그러나 오히려 코로나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은 이전보다 더 깜깜한 터널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요.

[밀실]<제79화> #'번아웃'된 의사, 간호사를 만나다

한번 늘어난 업무량은 줄지 않고,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 지속하자 일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데요. 힘든 환자들을 돌보는 이들 스스로가 또다른 환자가 됐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밀실팀은 '번아웃(burn out·소진)'이 왔다는 2030 의료진을 만나 그들의 우울한 현실을 들어봤습니다.
※나도 혹시 '코로나 블루'? 테스트 해보세요(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442)

병원엔 '위드 코로나'가 없다

내과 전공의 3년 차 홍한터(35)씨가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경민

내과 전공의 3년 차 홍한터(35)씨가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경민

"일상 회복으로 돌아오면서, 병원엔 코로나 관련 압력이 더 커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고요."

내과 전공의 3년 차인 홍한터(35)씨는 일주일에 두세번의 당직을 선다고 해요. 홍씨는 당직을 설 때 약 47명의 환자를 돌봅니다. 전체 병상의 5%를 코로나 중증 환자 전담 병상으로 배정하라는 정부 행정명령으로 인해 27명 정도 늘었습니다. 당직자가 20여명의 중환자를 맡았던 예전과 비교하면 2배 넘는 환자를 담당하게 되는 거죠.

홍씨는 "코로나 환자들을 진료할 때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연락이나 처치할 방법이 제한적이라 다른 중환자실에 있는 일반 환자들이 거꾸로 위험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다른 3년 차 전공의인 서연주(31)씨는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씨는 "응급실에선 코로나 환자를 분류하고 격리하는 작업이 따로 필요하다 보니, 일반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의사들도 이에 따른 피로도와 혼란스러움이 증가한 상태"라고 해요.

내과 전공의 3년차 서연주(31)씨가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경민

내과 전공의 3년차 서연주(31)씨가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경민

회의감과 자괴감 사이 어딘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에 대한 회의감과 자괴감은 점점 늘어납니다. 특히 의료 현장의 중추인 젊은 2030 의사·간호사들의 우울감은 더 심각합니다. 병원을 떠나는 일도 속출하고 있죠. '코로나 블루'를 넘어선 '코로나 블랙'이란 말까지 나오는 이유죠.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서 6년째 근무 중인 간호사 A씨(34)는 사명감과 보람만으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피로도가 쌓인 상태에서 일하다 보면 실수가 잦다. 실수하게 되면 또 크게 혼이 나고 자책하게 되는데, 피곤한 몸과 우울한 마음에 늘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증언해요. 그러면서 "특히 개인의 시간이 중요한 젊은 세대에겐 인정도 못 받고, '워라밸'이 좋지도 않은 이 일을 사명감 때문에 지속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하죠.

국내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처음으로 4000명을 넘긴 24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 병원인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스1

국내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처음으로 4000명을 넘긴 24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 병원인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스1

코로나 현장 파견 후 병상 배정에 참여했다는 공중보건의 B씨(30)도 "처음엔 지쳤다가, 이후엔 분노했다가, 이젠 그냥 우울한 상태다.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고 해요. 그는 "일방적 업무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서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전공의 서연주씨도 "일에 심각하게 회의감을 느껴 그만두는 동료들도 있지만, 잡을 수 있는 명분이 없다"면서 "사명감으로 일을 지속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료진의 일방적인 희생을 모두가 원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토로합니다.

우울증은 의사만 피해가지 않는다

일상적인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의료진에게 우울증은 어떻게 보면 늘 함께일 수밖에 없는 '동반자' 같은 존재입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6월 조사에 따르면, 보건소 코로나19 대응 인력 중 우울 위험군은 33.4%에 달했습니다. 3명 중 1명은 코로나와 우울증과 동시에 싸우는 셈이죠. 일반 국민(15.3%)의 2배를 넘는 수준입니다. 직업별로 분류했을 때도 의료진의 우울감은 단연 1위라고 해요.

 고(故) 임세원 교수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의 표지. 임 교수는 책에서 자신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밝혔다. 백경민

고(故) 임세원 교수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의 표지. 임 교수는 책에서 자신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밝혔다. 백경민

우울증 예방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던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도 우울증은 찾아왔습니다. 임 교수는 업무상 긴 시간 앉아있다 얻은 허리 통증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 스스로 털어놓은 내용이죠. 극단적 선택 고민까지 했던 그는 곤히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털어놨죠. 하지만 2018년 마지막 날,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 교수의 절친한 친구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료인이라고, 정신과 의사라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피해가지 않는다"면서 "의료진들도 도움이 필요할 땐 다른 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꼭 받아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넵니다. 또한 "지금 같은 사회에선 서로서로 지켜줘야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게 도와줘야 한다"고 해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코로나 발(發) 감염 위험과 우울감, 의료진은 매분 매초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회의감과 사명감 사이에서 매일 줄다리기를 하는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충분한 휴식과 업무에 따른 보상체계가 시급해 보입니다.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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