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분 바르고, 흉기 들고 올라간다…층간소음 골든타임 '6개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2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2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26일 오전 2시. 질질 끄는 소리가 10분 넘게 이어짐. ‘쿵쿵’하는 소리도 계속 들림.

20대 여성 A씨는 지난달부터 위층에서 견디기 어려운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소음 일기’를 적고 있다. “순간순간 욱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위층에 문제를 제기할 마음은 아직은 없다고 한다. A씨는 “요새 세상도 흉흉하고 어떤 사람이 사는지도 몰라 일단은 참기로 했다”고 말했다.

살인으로 번진 층간소음…코로나19 타고 활활

공동주택에서 종종 일어나는 층간소음 다툼. 위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 픽사베이

공동주택에서 종종 일어나는 층간소음 다툼. 위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 픽사베이

층간소음 갈등이 개인 간 감정싸움에 그치지 않고 강력 사건으로 번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경찰의 부실대응으로 논란이 된 인천 흉기 난동 사건은 층간소음이 화근이었다.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 사는 40대 남성 B씨는 지난 15일 아래층에 사는 일가족 3명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고로 40대 아내가 뇌사 판정을 받았고 50대 남편과 20대 딸이 크게 다쳤다. B씨는 경찰에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리고 시끄러워서 항의했고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지난 9월 전남 여수에서는 한 30대 남성이 평소 층간소음 문제로 불만을 품은 위층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다치게 한 일도 있었다. 지난 6월 경기도 안양에서는 50대 남성이 층간소음 갈등을 겪던 아파트 위층 주민의 집 현관문에 인분을 발랐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 분쟁이 급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관련 전화 상담 신청 건수는 4만 225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2만 6257건 대비 60.9% 증가한 수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는 “코로나19로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골든타임 6개월…대책 없나

층간소음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층간소음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층간소음 분쟁이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지만, 대책 마련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출신인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경찰청을 방문해 김창룡 경찰청장을 만난 뒤 “이번 인천 층간소음 부실대응 사건은 여러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층간소음으로 국민 불안이 가중되어진 지 오래됐음에도 층간소음 관련 112 신고 통계조차 마련돼있지 않은 것이 지금 경찰의 실패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은 112 신고가 들어왔을 때 살인(중요범죄)·폭력(기타범죄)·교통사고(교통) 등 사건을 58가지로 세분화하는데, 층간소음을 분류하는 코드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층간소음이 원인이 돼 이웃 간 싸움이 있었다면 해당 건은 ‘시비’ 등으로 분류된다. 임 의원실 관계자는 “층간소음 관련 코드가 없으니 층간소음으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층간소음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초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6개월 안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10명 가운데 8~9명은 원만한 합의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6개월 안에 합의점을 찾아내려고 서로 노력한다면 양보하는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는 게 차 소장 설명이다.

단 섣부른 접근은 금물이라고 한다. 차 소장은 “다짜고짜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는 등 무작정 행동하지 말고 인터폰을 통해 조심스레 접근하는 식으로 다가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