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人들]골목길에서 펼쳐지는 동화 속 세상 … 담벼락 화가 최명선

중앙일보

입력 2021.11.27 07:00

업데이트 2021.11.29 18:01

골목 입구, 커다란 기린이 반갑게 인사한다. 2층 높이의 담장에는 코끼리 가족이, 옆집에서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등장한다. 좁고 낮은 골목길을 올라 좌우로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 이어서 집채만 한 동화를 배경으로 ‘인증샷’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간판장이 출신 최명선씨는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 담벼락에 동화를 그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간판장이 출신 최명선씨는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 담벼락에 동화를 그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현재는 총천연색 알록달록함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인천 중구 송월동 3가는 낡은 쓸쓸함이 짙게 배어있던 동네였다. 이곳에 지난 2017년 담벼락 화가 최병선 씨(70)가 페인트와 붓을 들고 등장했다. 그리고 노후한 담벼락에 동화 속 세상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오래된 송월동 3가는 ‘동화마을’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학교 중퇴하고 ‘환쟁이’ 길로 들어섰지

그는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만화책만 끼고 살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인천에서 서울 아현동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당시 그림 좀 그린다는 만화가들은 다 아현동에 모여 있었다고 했다. 만화가 서정철의 문하생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작은 ‘네모 한 칸’에 답답함을 느꼈다. 다음으로 찾은 캔버스는 극장 간판이었다.

간판장이 출신 최명선씨는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 담벼락에 동화를 그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간판장이 출신 최명선씨는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 담벼락에 동화를 그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선배들 몰래 간판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지

대한 극장에 수습생으로 들어가 청소, 빨래는 물론 팔레트 닦고 선배들 잔심부름하며 간판 일을 배워나갔다. 페인트와 희석하는 신나 냄새마저도 좋았다. 선배들이 퇴근해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커다란 나무 합판에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최명선씨가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에서 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에서 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벽화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벽화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동화마을에 그린 벽화.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동화마을에 그린 벽화. 장진영 기자

군대에서도, 사우디 가서도 그림만 그렸어

그림과 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어딜 가나 그림 실력이 튀어나왔다. 군 시절에는 유격훈련보다 차트를 더 많이 만들었다. 제대 후 도장공으로 가게 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본래 업무 대신 그림만 그렸다. 관리자들의 초상화와 건설 노동자들의 향수를 달래줄 그림도 그렸다.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던 시절 최명선씨의 작업들. 장진영 기자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던 시절 최명선씨의 작업들. 장진영 기자

스크린 전성시대에는 잘 나갔었지

극장 간판은 구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인공은 크게, 조연들은 작게 배치하는 식이다. 로맨스 영화라면 애절한 표정이 포인트다.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언 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애절함, 홍콩 영화 속 성룡과 이연걸의 통쾌한 액션 등이 그의 붓끝에서 그려졌다. 인천, 부천을 거쳐 서울까지 여러 극장의 간판을 그렸다. 당시 잘 나가는 간판장이일수록 여러 극장을 돌았다고 한다. 이후 인천 인형 극장의 미술부장으로 2002년까지 일했다.

최근 최명선씨는 인천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개항로 맥주의 광고모델로도 활동했다. 그는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던 시절 자주 봐왔던 영화속 명장면덕에 포즈 잡기 수월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최근 최명선씨는 인천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개항로 맥주의 광고모델로도 활동했다. 그는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던 시절 자주 봐왔던 영화속 명장면덕에 포즈 잡기 수월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동화마을에 그린 벽화.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동화마을에 그린 벽화.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동화마을에 그린 벽화. 장진영 기자

최명선씨가 동화마을에 그린 벽화. 장진영 기자

밀려난 게 아니고 새로운 시작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단관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간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도장공 일을 하려 페인트 가게를 차렸다. 외벽 보수 대신 구도심 벽화 의뢰가 들어왔다. 지난 2005년에는 인천 월미도 벽화를, 2017년부터는 송월동 벽화를 그리고 있다. 간판장이 노하우를 다 쏟아 부었다. 외부에 노출되는 벽화는 수시로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 또한 담벼락의 상태에 따라 사용하는 페인트의 종류도 다르기 때문에 한 번의 붓질로 끝이 아니라 수시로 덧칠해야 한다. 그의 삶의 터전인 송월동은 원도심으로 ‘경제적, 문화적으로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그의 붓끝에서 나오는 동화는 이 지역을 향한 미련과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전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 중앙포토

코로나19 이전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 중앙포토

현재 유화 작업도 같이 하는 최명선씨는 작게나마 전시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인근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현재 유화 작업도 같이 하는 최명선씨는 작게나마 전시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인근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골목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헨젤과 그레텔 옆에는 거대한 도넛이, 골목 어귀를 지나면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진다. 이렇듯 송월동 동화마을에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는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들을 위해 골목길마다 벽화의 장르를 전환하고, 구성을 늘려나간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동화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발길이 뜸해진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병아리들이 내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이 참 좋았어. 그림에서 느끼는 보람은 아이들이 자라서 그 사진을 봤을 때 ‘좋은 추억이었구나’ 그거 하나면 돼. 다시 담벼락 앞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할 날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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