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남충·김치녀 남혐여혐 본질은, 일베·워마드 키우고 정치권 악용[윤석만의 뉴스뻥]

중앙일보

입력

얼마 전 인천 여경의 미숙한 대응을 놓고 또 다시 페미니즘 논란이 불 붙었습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여기에 진중권 전 교수까지 합세해 설전을 벌였죠. 일각에선 정치권이 20대 남녀갈등을 정쟁의 소재로 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무엇이 맞는 걸까요.
 논란의 시작은 장혜영 의원입니다. SNS에서 “페미니즘이 싫으면 여성을 죽이지 말라”고 한 겁니다. 교제 과정에서 벌어지는 남성 가해자의 살인 범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준석 대표는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은 사라져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특정 사례를) 일반화 하지 말라”는 그의 지적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이대남의 페미니즘 거부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고유정 사건’까지 끌어들인 건 남성 가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교제살인의 본질을 벗어났죠. 게다가 현장을 벗어난 건 남자 경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인들이 편향적으로 동원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정치인들이 많이 쓰는 수법으로 ‘편향성의 동원’을 얘기합니다. 사회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지만, 지지층 결집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걸 편취하고 부풀린다는 이야기죠. 여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객관적인 현실과 조작된 갈등 구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정고운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말합니다. “20대 남성이 느끼는 역차별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취업·결혼 등 게임의 법칙에 대한 분노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가부장적 인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성장시대에 취업이 어려워진 남성들이 여성할당제·남성군복무제 등에 주목해 비판적 입장을 갖게 된 거죠.”
 반대로 여성은 사적 영역의 차별에 주목합니다. 동등한 교육적 성취와 능력을 갖췄지만, 여성들에게 육아와 가사 활동이 쏠리고 있어섭니다. 결국 20대 남녀 모두 차별을 느끼지만, 차별의 영역과 준거집단이 다릅니다. 이해의 폭이 달라 생긴 문젠 거죠. 하지만 정치권은, 접점을 찾기보다 어느 한쪽 편만 들고 있습니다.

특권 누린 건 아버지 세대 

 20대 남성은 “남자로서 특권을 누린 건 아버지 세대인데, 우리에게 뭐라고 하니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50·60대는 남성 특권이 존재했습니다. 1970년 20세 전후  여성 중 대학생 비율은 3.3%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50·60대 남성은 여성을 경쟁자로 인식하기 어려웠습니다. 수적으로 적었고, 취업 후에도 출산·양육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경우가 많았죠.
 반면 지금은 다릅니다. 지난해 대학 신입생은 남녀 성비가 똑같습니다. 오히려 9급 공무원 합격자 중 여성 비율(55%)이 압도적입니다. 서울의 공립 중등교원 합격자는 80%가 여성이고요. 집단위협이론 관점에서 보면 취업과 진학시 경쟁자로 생각지 않던 여성이, 지금은 강력한 경쟁자가 되면서, 남성의 위기의식이 커진 겁니다.
 여기에 경제난까지 겹쳐 아버지 세대에 비해, 더 적은 자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고운 교수는 “시대가 변했지만 남성에겐 여전히 생계부양자 모델이, 여성에겐 양육자 모델이 적용되는 측면이 있다. 성역할 인식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이라고 분석합니다.

정치에 오염된 페미니즘 

 진영 논리에 포획된 페미니즘도 문젭니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 때 ‘피해 호소인’을 주장한 여성 정치인들이 대표적이죠. 페미니즘의 본질은 평등과 공정인데, 여성 정치인들의 위선적 행태로 페미니즘이 오염된 겁니다. 당시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여성운동가의 탈을 쓴 '여성운동 호소인'의 민낯”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스웨덴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선정하는 ‘유리천장지수’ 1등 국가입니다. 최근엔 ‘성평등’을 넘어 ‘성별을 묻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죠. 야콥 할그렌 전 스웨덴 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평등 논의는 모든 국민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상식으로 귀결된다”는 겁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나 차별받아선 안 됩니다. 스웨덴은 법적으로 여성만 우대하지도 않고, 생물학적 차이가 존재하는 부분까지 인위적인 할당도 없습니다. ‘미투’ 역시 남녀가 아닌 권력관계로 생각하죠. 우리 사회에 건강한 평등이 자리 잡으려면 정치권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