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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중 돌연 테마주 바람…이러면 꼬이는 '부당이득 계산법' [Law談-김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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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불공정거래의 실무와 관련한 현안 중 하나는 부당 이득 액수의 산정이다. 국내 자본시장법은 부당 이득의 규모에 따라 가중처벌을 한다. 뇌물 수수액이 많을수록 법정형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구조다. 부당이득액이 법원의 재판을 통해 확정되면 검찰은 이를 추징한다. 범죄수익 환수 차원이다. 그래서인지 혐의 여부 못지않게 부당 이득액이 얼마인지를 두고 혐의자와 금융당국 내지 수사기관 간 다툼이 치열하다.

주가조작과 같은 불공정거래의 부당 이득을 정확히 산출하는 건 매우 어렵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주가조작과 같은 불공정거래의 부당 이득을 정확히 산출하는 건 매우 어렵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정확한 부당 이득액을 산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갑(甲) 회사의 임원 A가 B와 투자수익보장약정을 체결한 후 B로 하여금 차명 외국 법인 명의로 갑 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유상증자의 성공을 가장했고, 법원도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인정했다. 그런데 갑 회사의 주식이 매도되기 직전에 당시 대통령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행사장에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기술에 대해 ‘This is our dream(이것은 우리의 꿈이다)’이라고 설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소에너지 관련주들의 거래량과 주가가 급등했다. 甲 회사 주식의 거래량과 주가도 덩달아 큰 폭으로 올랐다. 피고인들의 부당이득액은 전체 주가 상승분에서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한 부분을 제외하고 계산해야 하는데 이를 분리할 수 없어 법원은 전체 이득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다. 희토류는 말 그대로 매장량이 희박한 광물을 뜻하는데 첨단 부품의 소재로 사용된다. 금융당국은 C씨가 약 1년 6개월간 희토류 대체재로 평가받는 을(乙) 종목의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로 인한 부당 이득액은 약 20억원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그 기간 중 전 세계 희토류의 90% 정도를 생산하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을 암시하면서 희토류 테마주 바람이 불었다. 결국 C 종목의 시세조종 주가 상승분 중 희토류 테마주의 기여분을 공제할 수 없어 금융당국은 결국 이 사안의 부당 이득액을 불상으로 정정해야 했다. 법원·검찰은 물론 최일선에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범죄와 대적하는 금융당국도 부당 이득액 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의 부당 이득액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위반 행위와 주가 간 인과 관계를 따져야 한다. 하지만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한두 개가 아니다. 특히 주식 거래는 어떤 요인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줬는지를 알 수가 없다. 위반행위 외에 주가에 영향을 줄 만한 제3의 원인이 두드러지면 전체 이득액은 산정 불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그럴만한 제3의 원인을 찾아내서 부당 이득 액수를 흔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득 규모에 따라 형사책임을 엄히 추궁하겠다는 법의 취지는 사라지고 흡사 가중처벌 여부는 운에 좌우되는 것 같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위반행위자 간 형평에 반할 뿐 아니라 사법 불신까지 초래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요컨대 법률 규정이 주가 형성의 특성을 제대로 감안하지 못해 발생하는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

부당이득 산정 기준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게티 이미지뱅크

부당이득 산정 기준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게티 이미지뱅크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부당이득 산정 기준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필자는 검찰 차원의 기준 마련 실무 작업을 주도한 바 있다. 그러나 산정기준과 관련해서도 제3의 원인이 주가에 영향을 주었을 때 이를 도려낼 일반적 방식을 어떻게 설정할지, 시세조종으로 형성된 주가를 토대로 합병비율 산정이 이뤄진 경우처럼 위반 행위를 전제로 추가 이벤트가 이어졌을 때 부당 이득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 등 난제가 많다. 부당 이득의 산정 기준이 도리어 책임 면피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본적 법정형은 높이되 부당 이득을 가중 처벌과 연계할 것이 아니라 금융당국의 과징금 부과 영역으로 넘겨 환수토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과징금은 형사 처벌과 달리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현행 자본시장법과 같은 가중처벌 방식은 외국에서도 그 입법례를 찾기 힘들다. 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고 목적이 분명해도 그 수단에 결함이 많으면 목적 달성은 어렵고 부작용만 유발할 수 있다. 확실한 해결책이 없다면 제도의 틀을 바꾸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Law談 칼럼 :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

주식인구 800만, 주린이 2000만 시대.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자본 시장의 현안을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장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도 모색합니다. 암호화폐 시장 이야기도 놓칠 수 없겠죠?

김영기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김영기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대검찰청 공안3과장, 전주지검 남원지청장,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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