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자 수석ㆍ보좌관 회의 발언을 청와대 전직원이 들을 수 있도록 회의를 화상으로 중계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기뻐하는 것은 이 순간까지”라며 승리에 도취된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높은 지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이라며 “지지에 답하지 못하고,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고, 실망의 골도 깊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겁고 두려운 마음으로 당부한다”며 유능함, 도덕성, 태도 등 3가지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문 대통령이 당부했던 ‘유능함’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무너졌고, ‘도덕성’은 조국 사태 등으로 결정적 흠집이 났다. 특히 문 대통령 스스로 “거의 (정치의)본질”이라고 강조했던 ‘태도’와 관련해선 아파트를 팔지 않으려고 직(職)에서 물러나는 ‘직보다 집’ 논란과 인사 등 정책실패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등이 반복되며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문 대통령이 3년전 당부했던 세가지 항목 중 어느 하나도 자신있게 "성공"이라고 말하긴 어려워진 모양새다. 그리고 “실망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던 문 대통령의 말처럼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은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높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공교롭게도 이 후보는 문 대통령이 말했던 3가지 항목을 핵심 차별화 포인트로 삼고 있다. 부동산 문제로 상처입은 '실력', 조국 사태로 흠집 난 '도덕성', 그리고 '태도'다.
이 후보는 지난 22일 “부동산 문제, 청년과 무주택 서민의 고통 가중 등에 대해 사과 말씀 드린다”며 특히 “국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않고 또 내로남불 식의 남탓이라든지 또는 전세계적 현상 등 외부 조건에 그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는 점도 반성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23일엔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관련 “잘못이 확인되면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며 “똑같은 행위에 대한 책임도 권한이 있을 땐 더 크게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진영이라는 이유로,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 더 심한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집권 세력이기 때문에 다른 일반인들보다 가혹한 책임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 전 장관과 선을 그었다.
강경론이나 내로남불로 비쳐졌던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태도'도 바꿨다. 몸을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 후보는 22일 대장동 사건과 관련 “거대 이권 사업에서 사적 이익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점만 주장했지 ‘왜 환수하지 못했냐’, ‘민간 비리잔치를 예방하지 못했냐’는 지적에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한 것 자체가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고 했다.
이 후보의 태도 변화와 관련 정치권에선 “실패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각을 세우고, 싸워서 이기려고 했던 현정부와 차별화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캠프의 전략본부장을 맡은 강훈식 의원은 2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가 국정감사를 통해 대장동과 관련 의혹을 완벽하게 해명했지만, 국민 감정은 돌아오지 않았다”며 “당시 국감을 놓고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졌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이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러 조언이 있었고, 이 후보가 이를 진심으로 수용하면서 최근의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국민들이 납득할 때까지 진정성을 담은 행보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번 선거의 승부처가 감성적 측면이 강한 2030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정치공학보다 정치심리학적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진정성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