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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134살 피아노, 그건 민주화운동 교수의 아내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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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봄 인천항. 30대 남편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그는 “뒷바라지해준 부인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배에 싣고 온 피아노와 함께 내렸다. 신혼임에도 홀로 고생한 아내를 위한 선물이었다. 그렇게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 피아노는 수십년간 부부와 함께한 뒤 최근 새 보금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원로 행정학자 고(故) 이문영(1927~2014) 교수와 그의 애장품인 134년 된 피아노 얘기다.

귀국길, 아내 위해 택한 선물

1967년 이문영 교수 부부와 3남매는 서울 종로구 사직동 자택에 살았다. 사진 이선아씨 제공

1967년 이문영 교수 부부와 3남매는 서울 종로구 사직동 자택에 살았다. 사진 이선아씨 제공

이 교수의 첫 직업은 교사였다. 그러다 1956년 미국행 배에 올랐다.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하겠단 마음이 강했다. 아내 김석중씨의 지지도 한몫했다. 초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아내는 본인이 유학비를 지원하겠다며 남편의 도전에 힘을 실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학업에 매진했고, 3년 만에 행정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고로 산 미국 소머(Sohmer&Co)사의 피아노도 함께였다. 이 교수는 아내와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1965년 이문영 교수의 아들 선표씨의 돌잔치. 선표씨 뒤로 이 교수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가 보인다. 사진 이선아씨 제공

1965년 이문영 교수의 아들 선표씨의 돌잔치. 선표씨 뒤로 이 교수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가 보인다. 사진 이선아씨 제공

그의 소망대로 피아노는 파란만장했던 시절, 가정의 등불이 됐다. 고려대에서 다시 교편을 잡은 이 교수는 1960년대 이후 격동의 근현대사 중심에 섰다. 3·1민주 구국선언, YH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에 목소리를 내면서 교수직을 세 차례 해직당했고, 4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65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교정에 난입했을 때 항의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이 교수가 고초를 겪는 와중에도 아내는 꿋꿋이 3남매를 길러냈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했고,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엄혹한 시절을 버텨냈다고 막내딸 선아(55)씨는 전했다.

134세 국내 최고령 피아노

2010년쯤 선아씨의 딸이 할아버지의 피아노를 치고 있다. 사진 이선아씨 제공

2010년쯤 선아씨의 딸이 할아버지의 피아노를 치고 있다. 사진 이선아씨 제공

손주까지 3대에 걸쳐 이 교수 가족과 함께했던 피아노의 여정은 2014년 잠시 멈춰섰다. 이 교수 부부가 세상을 뜨고 자녀들이 서울 쌍문동 자택을 처분하면서다. 피아노는 이 교수가 소장했던 서적 수십권과 함께 한국사법교육원으로 이동했다. 이 교수가 현직 시절 친분을 맺은 이영근 한국사법교육원 이사장이 교육원 내 이문영 장서관을 마련하면서 거처를 옮겼다. 공적 공간으로 나오면서 피아노의 역사도 재조명됐다. 이영근 이사장은 “전문가들이 피아노를 만든 회사의 설립연도와 피아노 시리얼 넘버를 볼 때 1887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정대로라면 이 피아노의 나이는 134세로 문화재로 지정된 배재학당 피아노(1911년산)보다 20여년 앞선 국내 최고령 피아노다.

이 교수 뜻 따라 피아노 기증 

이문영 교수의 피아노는 최근 대불호텔 전시관 3층에 전시됐다. 사진 인천중구청

이문영 교수의 피아노는 최근 대불호텔 전시관 3층에 전시됐다. 사진 인천중구청

높아진 가치에도 이 이사장은 최근 이 피아노를 내놓았다. 그는 인천 중구에 청년 김구 역사 거리가 조성되는 걸 본 뒤 “김구 선생을 제일 존경한다”는 이 교수의 생전 발언이 떠올랐다고 했다. 이 교수의 자녀들과 상의해 고인의 뜻에 따라 인천 중구청에 피아노를 기증하기로 했다. “더 많은 이들이 피아노에 서린 세월의 더께와 가치를 느꼈으면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인천 중구청은 김구 역사 거리 인근 대불호텔에 피아노를 전시하기로 했다. 과거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 3층에서 피아노 연주회가 열렸다는 기록 등에 따라서다. 인천 중구청은 피아노를 영구 보존해 연구, 교육 자료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선아씨는 “우리 딸까지 3대가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며 울고 웃었다. 부모님이 떠난 뒤 한동안은 마음이 아파 보지 못했던 소중한 가족이었다”며 “우리에게 행복을 줬던 피아노가 앞으로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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