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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 보고 경찰된 그녀…32년뒤 유튜브서 'B급 감성' 폭발

중앙일보

입력

보이스피싱에 대해 통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신하영(51) 경위.신 경위가 들고있는 'ㅇㄱㄹㅇ' 인형은 김일동 작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인형이다. 유튜브 채널 '서초싱글Talk' 캡처

보이스피싱에 대해 통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신하영(51) 경위.신 경위가 들고있는 'ㅇㄱㄹㅇ' 인형은 김일동 작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인형이다. 유튜브 채널 '서초싱글Talk' 캡처

정복을 차려입었지만, 손에는 ‘ㅇㄱㄹㅇ’이라고 적혀 있는 인형을 들고 있는 경찰이 있다. ㅇㄱㄹㅇ은 ‘이거 레알’(이거 진짜)이라는 신조어의 초성으로 MZ세대가 많이 쓰는 용어다. 상황을 설명할 때는 1인 2역도 마다치 않는다. 최근 유튜브 채널 ‘서초싱글Talk’에서 활약하고 있는 방배경찰서 생활안전과 범죄예방 진단팀 신하영(51) 경위의 얘기다.

32년 차 경찰의 정성스러운 ‘B급 감성’

신하영 경위가 19일 오전 서울 방배경찰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 경위는 카메라가 익숙한듯 자연스럽게 다양한 포즈를 선보였다. 장진영 기자

신하영 경위가 19일 오전 서울 방배경찰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 경위는 카메라가 익숙한듯 자연스럽게 다양한 포즈를 선보였다. 장진영 기자

32년 차 경찰인 신 경위는 영상 속에서 경찰스럽지 않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행동으로 구독자를 사로잡았다. 스스로 ‘B급 감성’이 충만하다는 신 경위는 “코로나19로 범죄예방 교육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세상이 바뀌면 경찰도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로 바뀐 이 환경을 장악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방배서와 서초구청의 협업으로 기존 서초구청의 유튜브 채널에 ‘방구석 보디가드 경찰서 사람들’이라는 유튜브 코너가 탄생했다. 콘텐트를 만들기에 앞서 구민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신 경위는 “약 600명이 참여했고 이 중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보니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았다”며 “홍보랑 교육이 너무 없어 불안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관련된 콘텐트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주 걸려 영상 한 개 탄생…“공신력 위해” 

신 경위는 지난 5월부터 보이스피싱 콘텐트를 시작으로 성범죄의 전조 증상, 스토킹 등 1인 가구가 당하기 쉬운 범죄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10분이 안 되는 영상을 준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주. 신 경위는 “경찰 정복을 입고 출연하기 때문에 공신력이 있어야 한다”며 “논문, 내·외부 통계, 경찰 규정과 매뉴얼 등을 정리해서 대본을 만든다”고 했다. 신 경위의 정성에 시청자들은 댓글로 “덕분에 보이스피싱을 막을 수 있었다” “혼자 사는데 이 영상을 보고 안심된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가장 많이 본 영상의 조회 수는 3000회가 넘는다.

채널의 인기가 높아지자 지난 4일 올라온 영상엔 김상문 방배경찰서장도 출연했다. 김 서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치 경찰제가 도입되면서 자치단체와의 협업이 중요하다”며 “경찰이 많이 알려주고 주변에 보여야 국민은 ‘체감 안전도’를 느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터닝 포인트’ 주고 싶어”

방배경찰서 관할 지역은 치안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좋다고 한다. 방배서는 '범죄 예방'의 본을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위와 같은 슬로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장진영 기자

방배경찰서 관할 지역은 치안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좋다고 한다. 방배서는 '범죄 예방'의 본을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위와 같은 슬로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장진영 기자

신 경위가 ‘범죄 예방’에 열정적인 이유는 변화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수서경찰서와 서울청 여성청소년과에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의 변화를 체감했다. 신 경위는 “2013년에 싸움을 잘한다는 소위 ‘일진 짱’을 직접 만나보니 정말 순수했다”며 “그때 구청과 협업해 지원과 멘토링을 했고, 이 친구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경 써주면 아이들은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멘토링 했던 청소년 9명은 직장인이 됐고, 신 경위는 지금도 그들과 연락을 이어간다고 했다.

그는 또 학생·학부모·교사 등을 상대로 1000회 이상의 무료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신 경위는 “힘들었지만, 학생들과 만나고,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강의를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판 ‘양자경’…“끊임없이 운동과 공부”

신하영 경위의 목표는 '아동청소년이 행복해지는 대한민국'이다. 장진영 기자

신하영 경위의 목표는 '아동청소년이 행복해지는 대한민국'이다. 장진영 기자

신 경위는 학창시절 본 홍콩 영화에서 경찰 역을 맡은 배우 양자경을 보고 경찰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영화 속 양자경이 허벅지에서 무기를 꺼내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문무를 겸비한 경찰이 되기 위해 공부와 운동을 끊임없이 한다”고 말했다.

배움에 대한 신 경위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017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입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해부턴 경찰대 치안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과 미디어를 이용한 신종 범죄가 계속 생겨나 언론홍보를 공부했고, 지금은 범죄학과에서 범죄 예방을 공부하고 있다”며 “사건 발생 후 범죄자한테 주목하면 의미가 없다. 범죄 예방에 대한 ‘터닝 포인트’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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