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률 曰] 그 머크가 그 머크 아니었어?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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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34면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1948년 문을 연 오픈 케틀(Open Kettle)이라는 미국의 도넛가게는 1950년 던킨 도넛(Dunkin Donut)으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 각지에서 도넛과 커피를 팔았다. ‘커피에 적셔 먹는 도넛’을 판다는 마케팅 정체성을 회사 이름에서부터 보여준 것이다(전설의 투자자인 피터 린치는 아침마다 도넛과 커피를 사들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고 던킨 도넛에 투자해 15배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렸다). 그러던 이 회사는 2018년 회사명에서 도넛을 빼고 던킨만 남겼다. 이듬해인 2019년부터는 로고에서도 도넛을 빼고 던킨만 썼다. 도넛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팔겠다는 의도였다. 애플컴퓨터가 2007년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를 떼어내고 애플로 바꾼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첫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컴퓨터에 한정된 제품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었다.

같은 뿌리 독일 머크와 미국 MSD 혼동
세계적 브랜드 순위에 국내 기업 적어

회사나 제품 이름, 어떤 상징의 의미로 쓰이는 ‘브랜드(brand)’는 자신의 소와 다른 사람의 소를 구별하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불에 달군 인두로 소에 찍었던 행위에서 유래한 단어다. 현대사회에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나 충성도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에 따라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 역시 달라진다. 사실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선거에 패한 정당이 다음 선거를 앞두고 간판을 바꿔달고 나타나는 것도 브랜드의 힘이 중요하다고 여겨서다.

하물며 브랜드로 먹고사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회사 정체성에 변화를 주려 할 때, 브랜드가 사업 내용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거나 인수합병 등으로 다른 회사를 소유하게 됐을 때 브랜드를 바꾸는 사례가 많다. 예컨대 LG는 1995년 럭키금성(Lucky Goldstar)의 영어 두 단어 앞 글자만 따서 LG로 간판을 바꿨다. 브랜드 변화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대하던 LG가 ‘국내용’이란 이미지를 벗고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됐다.

브랜드가 비슷해 혼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 쉐링은 미국에서는 쉐링프라우, 그 밖의 나라에서는 쉐링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벌였다. 그러던 2009년 MSD가 쉐링프라우를 인수했다. 이보다 앞선 2007년 바이엘이 쉐링을 인수해 바이엘 쉐링 파마로 부르다 2011년 바이엘 헬스케어로 통합했다. 최근 먹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을 받는 ‘머크’는 원래 353년의 전통을 가진 독일 회사 이름이다. 그런데 1차 대전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머크의 미국 지사를 민간기업인 ‘머크 앤 컴퍼니’로 넘기면서 독일 머크와 미국 제약사 MSD가 ‘머크’라는 이름을 나눠서 쓰게 됐다. 그런 탓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는 MSD의 약인데, 한국에서는 한국 MSD가 아닌 한국 머크의 약으로 알려져 서로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한국 머크가 어부지리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한국 머크는 바이오·제약은 물론 반도체·환경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코로나19 치료제 때문에 사업 분야가 제약으로 제한돼 보일 수 있어서다.

그렇더라도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 꽃’이 되듯 어떻게든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브랜드를 감추거나 노브랜드를 브랜드로 쓰는 기업도 있지만 사실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에서 순위에 오른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정도에 불과하다.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지난달 20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전자 5위, 현대차 35위, 기아차 86위를 기록했다. 1위는 애플이었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영국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발표한 ‘최고의 글로벌 브랜드 2021’ 순위에서는 2위에 올랐다. 1위는 구글, 3위는 넷플릭스, 4위 유튜브, 5위는 왓츠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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