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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교사·학부모 반대 교육과정 개편, 왜 서두르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4호 34면

수학·과학 등 기초 수업 줄고 민주시민 교육 확대

입시개편 없이 고교학점제 추진 … 교사 72% 반대

미래 인재 키울 가치·철학 담은 보완책 마련 시급

‘2022 개정 교육과정’엔 교사와 학부모 모두 부정적이다. 개편 방향은 맞으나 방법이 틀린 게 있고, 둘 다 잘못된 것도 있어서다.

먼저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다는 취지엔 공감한다. 학생들의 적성과 끼를 살려 각자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게 하는 건 올바른 방향이다. 문제는 시행 시점인 2025년까지 현장의 준비가 어렵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를 하려면 학교시설과 교원수급 등 교육체제를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보통 한 학기 50여 개(일반고 기준)인 교과목 수도 100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교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8월 한국교총이 전국 고교 교사 2206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3%가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을 반대했다. 심지어 시범 운영학교 교사들도 64.2%가 부정적이었다. 학점제에 필요한 교원 확충과 학사운영 개편안 등이 준비돼 있지 않아서다.

그런데 정부는 임기를 6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대못을 박으려고 한다. 교육공약 1호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공약인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무리하게 추진하다 임기 1년차에 유예, 2년차에 무산됐다. 오히려 조국 사태 이후 입시 공정성을 강화한다며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을 늘렸다. 절대평가 전환과 거꾸로 갔다.

고교학점제 시행의 전제는 수능 개편이다. 상대평가로는 고교학점제 아래 입시를 치를 수 없다. 학생마다 배운 과목이 다른데, 무슨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오히려 공부가 부족한 입시과목을 학원에서 배우느라 사교육을 부채질할 우려도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도 “지금 수능으로는 (적용이) 어려운 혁신적인 교육과정 개정”(24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능을 포함한 대학 입시 개편은 쏙 빼놨다. 생색만 내고 골치 아픈 문제는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방향 자체가 논란인 것도 있다.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 등의 필수 이수학점을 대폭 줄였다. 가뜩이나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수업시수까지 줄면 학력저하가 심해질 게 뻔하다. “학력 보충을 위해 사교육이 더 심화될 수 있다”(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과학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진다. 선진국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Math(수학)의 앞글자를 딴 ‘STEM’ 교육을 국가적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한국에선 서울대가 신입생 대상의 ‘물·수 알못(물리·수학을 잘 알지 못하는)’ 반을 운영할 만큼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전교조도 “사회·과학의 필수학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작 필요한 과목의 수업량은 줄이면서 특정 이념이 주입될 수 있는 교육은 늘리겠다고 한다. 진보 교육감들이 주장해온 민주시민, 생태환경, 노동인권 교육이 대표적이다. 특히 민주시민,생태환경 교육은 모든 과목과 연계해 전체 교육과정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벌써부터 “특정 이념·가치의 과잉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하윤수 한국교총 회장)는 우려가 나온다.

학교 현장의 반응도 좋지 않다. 지난 6월 국가교육회의는 전국 학생·학부모·교사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초중고교에서 강화돼야 할 교육 영역을 조사했는데, 1·2위가 인성(36.3%)과 인문학적 소양(20.3%)이었다. 반면 정부가 강조하는 민주시민 교육의 응답률(5.1%)은 낮았다.

국가 교육과정은 그 나라가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 하는 가치와 철학·방향성을 담은 미래사회의 헌법과도 같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앞으로 치고 나가는데, 한국 교육만 유독 퇴행시키려는 이유는 뭔가. 현 정부 임기 내에 매듭을 짓지 못해도, 미래를 위한 본질적인 고민이 교육과정 개편안에 보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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