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짓고 침묵하면 정신적 고통 커, 각종 의혹 털어놔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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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32면

러브에이징

사회적 불의에 대한 비판을 침묵(沈默)시키려는 중국의 구시대적 행태에 대해 구미 선진국들이 베이징 동계올림픽(2022년 2월) 외교적 보이콧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침묵은 구업(口業)을 없애고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진실을 덮어버리는 역기능도 있다. 과연 선진 국민이라면 침묵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 걸까.〈표 참조〉

사피엔스의 언어는 인류를 문명사회로 인도한 1등 공신이다. 인류는 언어를 활용해 세밀한 부분까지 서로 소통하면서 발전을 지속했다. 기원전 7세기 무렵에도 ‘말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표현이 아시리아 설화의 주인공(아히칼)을 통해 나타나듯 언어의 위력과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로 한마디 말은 천 냥 빚을 탕감시키는가 하면 살인을 부르는 흉기로도 돌변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의 얼굴을 가진 말의 엄중함을 경계하기 위해 거짓말·이간질·막말 등은 죄로, 침묵은 금처럼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지구촌 곳곳에서 통용된다.

하지만 ‘사회적 비극은 악인의 잔인함보다 착한 사람의 침묵 때문에 초래된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설교처럼 침묵의 오남용은 공동체의 인권, 이익, 정의, 선진화 등을 가로막는 폭력에 동참하는 행위다.

정치권, 마피아처럼 침묵의 계율 실천

대표적인 예가 마피아의 십계명으로 불리는 침묵의 계율인 오메르타(Omerta)다. 조직원은 조직의 비밀을 절대 누설하지 말라는 행동 강령인데 이를 위반한 내부고발자는 끝까지 추적해 살해하고 실패하면 가족이 해를 입는다.

오메르타는 마피아뿐 아니라 크고 작은 이익이 걸린 정치권과 이익 단체, 폐쇄적인 공동체 등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다수에 속하고 싶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성이 결합한 탓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1986년 이란의 작은 마을(쿠파니에)에서 자행된 무고한 네 아이 엄마에 대한 투석형(投石刑)을 폭로한 영화 ‘더 스토닝(The stoning)’은 집단적 침묵이 초래한 야만적 폭력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가해자인 남편 알리는 위자료 없이 아내 소라야와 이혼하고 14살 소녀와 재혼하기 위해 소라야에게 간통 누명을 씌운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소라야의 결백을 믿는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 ‘침묵’하고 심지어 성직자와 몇몇 이웃은 알리에게 적극적으로 동참한 결과 소라야는 억울한 투석형을 받는다.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장면은 진실 앞에서 침묵했던 이웃들이 투석형 집행 현장에 모여 소라야의 아들에게 ‘용맹함을 보이라’고 소리치며 돌팔매질 우선권을 주고 아들은 어머니를 향해 돌을 던지는 상황이다. 뒤이어 주민들이 너도나도 죄의식 없이 돌을 던지며 신의 이름으로 그녀를 처단해야 한다고 외친다.

집단적 범죄 행위가 집단적 침묵으로 은폐될 뻔했던 이 비극은 자동차 고장으로 우연히 그곳에 들렀던 프랑스 언론인 제임스 카비젤에게 비밀스레 접근한 소라야 이모의 고발로 세상에 드러났다.

안타깝게도 35년 전 쿠파니에 주민들의 행태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서 상존한다. 일례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5·18광주민주화운동 발포 명령자도 명령을 하달받은 사람들의 침묵 속에 아직 공식적으로는 미제로 남아있으며, 가족과 이웃의 침묵 속에 학대받는 수많은 어린이는 죽기 전까지 매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또 대장동 사건처럼 사회적 이권을 불법적으로 공유한 기득권층도 자신들의 범법 행위에 대해 마피아 조직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발휘하면서 오메르타를 실천하고 있다.

혹자는 형사 피고인에게도 묵비권이 보장되는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거짓말도 아닌 침묵이 무슨 문제냐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특히 공인이라면 국가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최소한 자신과 소속 집단의 잘못을 드러낼 양심과 용기와 책임감은 보여줘야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비밀을 마음에 묻어두면 가슴이 꽉 막힌 듯한 고통과 함께 불안·우울·불면 등에 빠지기 쉽다.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충분히 드러내고 싶은 심정은 식욕처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죄를 비밀로 간직할 경우 죄의식까지 더해져 정신적 고통은 훨씬 크다. 종교적인 고해성사가 수많은 사람에게 심신의 평화를 주고, 현대 정신의학에서도 상담자에게 마음속 고민과 비밀을 털어낸 뒤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환기 요법을 활용하는 이유다.

만일 죄를 짓고 침묵해도 죄의식이 없다면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게도 비밀을 외부로 표출하고 싶은 표현 욕구는 존재한다. 아내·친구·이웃 등 3명을 살해한 뒤 39년간 법망을 피했던 미국의 부동산 재벌 로버트 더스트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자신의 삶과 범죄 행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고, 촬영 후 화장실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무심결에 “내가....(중략) .....물론 그들을 다 죽여버렸지”라는 자백 같은 독백을 했다. 검찰이 ‘사이코패스’로 지목한 살인자 더스트도 자신에게까지 침묵을 지키기는 어려웠던 셈이다. 그는 이 독백 때문에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공인은 잘못 드러낼 용기·양심 있어야

‘말을 배우려면 인간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침묵하는 법을 깨치려면 신을 따라가야 한다’라는 말처럼 영적인 수행을 위한 침묵은 자신을 성찰하고 영혼에 만족을 주는 소리 없는 언어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기득권층에게 제기하는 각종 의혹에 대해 침묵을 악용하는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를 박탈하고 심신 건강을 해치는 도덕적 범죄 행위다. 하루빨리 그들이 진실한 침묵의 시간을 거쳐 오메르타를 깨고 진실이 주는 마음의 평화를 국민과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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