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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상형’ 휴머노이드와 사랑할 수 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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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28면

코딩 휴머니즘

코딩 휴머니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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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뇌를 스캔해서 완벽한 이상형을 3D 프린터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더는 사랑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을 정도라면 그보다 나은 선택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가 로봇이라면? ‘완벽한 배우자’로 설계된 휴머노이드가 당신과 침대를 함께 쓴다면?

영화 ‘아임 유어 맨’(2021)이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알마가 한 남자 톰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영국 억양에 유려한 말솜씨로 접근하는 톰이 매우 매력적인 남자라고 느껴지는 찰나, 사소한 버그가 발생하고 톰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무한루프에 빠진다. 톰을 고쳐서 납품해 드리겠다는 서비스 측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마는 그가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화학적 사랑 유효기간은 900일  

알마는 고대 설형문자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인간은 언제부터 시와 은유를 표현했는지가 그녀의 관심사. 인류 최초의 문학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길가메시 서사시’도 설형문자로 되어 있다. 알마는 길가메시 이전에도 문학이 있었을 거라 추측하며 기원전 40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언어유희를 탐구한다.

그런데 이와 동떨어진 연구도 병행하게 된다. 그것은 ‘완벽한 배우자’로 설계된 휴머노이드 로봇과 3주간 동거를 해야 하는 실험이다. 그 실험은 결혼, 직업, 인권, 시민권 등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큼 역사적인 실험이지만, 사실은 그녀가 속한 대학에서 연구비 지원을 위해 의무적으로 참여시킨 실험이었다. 알마는 휴머노이드와 자신의 집에서 동거한 후 인문학자로서의 ‘감정서’를 대학에 제출하기로 한다.

영화에서 알마에게 휴머노이드란 매우 상반된 오브제다. 시와 은유로 충만한 알마에게 논리적인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이란 매우 거북한 존재다. 그런 알마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린 시간은 사흘이었다.

영화 ‘아임 유어 맨’은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2013)를 떠오르게 한다.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다뤘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서로 닮았다. 영화 ‘그녀’에서는 아내와 별거 중인 테오도르가 외로움에 사무치다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에 접속하게 된다. 테오도르가 원할 때면 언제든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사만다와 함께하게 되었다. 늘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 주는 사만다로 인해 테오도르는 행복을 되찾게 되고,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일상을 하나하나 챙겨주기 시작하며 그의 메모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판을 진행하는 고난도 작업까지 척척해 낸다. 결국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느끼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인간과 휴머노이드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아임 유어 맨’. 휴머노이드 톰은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연인 알마의 취향과 고통, 슬픔의 원인도 알아낸다.

인간과 휴머노이드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아임 유어 맨’. 휴머노이드 톰은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연인 알마의 취향과 고통, 슬픔의 원인도 알아낸다.

과연 미래에는 그런 사랑이 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인공지능 사랑은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사랑이 기계적일 순 없겠지만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즉 호르몬 관점에서 보면 사랑에도 원리는 있다. 뇌하수체에서는 옥시토신이, 중추신경계에서는 세로토닌이, 전두엽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된다. 사랑을 지속시키는 도파민은 조금씩 감소하여 900일 주기로 끝이 난다.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따른 사랑의 유효 기간은 약 900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실제로 ‘가상 호르몬’을 연구하고 있다. 뉴질랜드 인공지능 연구 기업인 ‘소울머신(Soul Machines)에서는 인간 뇌의 뉴런을 디지털화하여 인간의 감정을 모사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인간을 개발하고 있다. 생명공학자이자 영화 ‘킹콩’ ,‘아바타’의 안면 시뮬레이션 개발자이기도 한 CEO 마크 사가는 이 연구를 가상 신경망(neural network), 사물 인식(object recognition),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 기술을 기반으로 사람의 표정이나 음성에서 감정을 읽어내고, 동시에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그중 가상 신경망 기술이 돋보인다. 이것은 뇌의 뉴런과 시냅스가 인간이 사고하는 과정에서 작동되는 원리를 디지털로 구현한 것인데, 일명 ‘디지털 브레인’이라고 부른다. 뉴런이 자극을 받아 처리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갖고 있고, 시냅스가 이런 뉴런 간의 정보 전달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뇌신경 체계를 이루는 것처럼, ‘디지털 브레인’에서는 뉴런과 시냅스를 대신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고 뇌신경전달물질인 호르몬의 역할을 대신하는 ‘가상 호르몬’까지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도 사람처럼 겁을 먹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사랑을 느낄 때는 도파민이 분비되는 원리를 모사하여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사랑에 호르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복잡하고 예외적인 요소가 많으니까. 그것은 파이썬이나 C++과 같은 일반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로 명시적 코딩을 할 수는 없다. 사랑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단순 정렬 알고리즘이 아니니까. 간혹 이해와 논리를 초월하는 상호 간의 갈등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번뇌를 거듭해야만 완성되는 게 지리멸렬한 인간의 사랑이니까.

뉴질랜드 기업, 가상 신경망 연구

따라서 사랑의 알고리즘은 범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머신러닝’을 활용해야 한다. 인간이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지식을 배우는 것처럼, 머신러닝이란 인공지능에게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주고 거기에서 어떤 패턴을 찾아내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머신러닝의 대표적인 알고리즘이 바로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사랑의 알고리즘은 ‘머신러닝’ 활용해야

사랑의 알고리즘은 ‘머신러닝’ 활용해야

‘아임 유어 맨’에서 휴머노이드 톰은 알마의 휴먼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다. 그리고 알마와 대화를 통해 딥러닝을 하고 그녀조차 모르는 페르시아 설형문자를 알고 있으며 그보다 복잡한 고대 수메르 문자도 해석할 수 있다. 그녀가 수년 동안 연구한 인문학 과제를 단 몇 분 만에 끝낼 수도 있으며, 독일 여성의 7%에 해당하는 그녀만의 취향을 탐구하며 지금 이 순간을 로맨틱하게 선사한다. 그리고 단 사흘 만에 알마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고통과 슬픔의 원인도 밝혀낸다.

그 모든 것을 마치 시와 은유처럼 출력해 내는 톰에게 알마는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완벽한 이상형과 황홀한 밤을 보낸 알마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그리고 톰을 떠나 보낸다.

알마는 감정서를 작성한다. 그 감정서에는 톰과의 완벽한 관계 속에서 어쩌면 너무나 완벽했기에 인간적이지 않은 단면을 묘사한다. 그녀의 삶에서 그동안 느껴왔던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리움, 상상력, 행복에 대한 추구, 그리고 근원적인 고통이 단 사흘 만에 풀어져 버렸을 때 시시해진 자신과 마주했던 일. 그렇게 굴곡진 삶의 가장자리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껴야 했던 공허함.

알마는 톰과 헤어지는 순간에도 인상적인 대사를 남긴다. “저는 당신을 못 보내요. 그러니 당신이 떠나요. 알고리즘을 써서 떠나요. 나는 당신을 붙잡을 테니.”

‘아임 유어 맨’을 보면서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상상해 본다. 한편으론 내가 가진 사랑의 알고리즘과 그것을 평가하는 감정서를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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