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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없는 재난 요란하게 빨리 대처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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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20면

둠-재앙의 정치학

둠-재앙의 정치학

둠-재앙의 정치학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21세기북스

확진자 2억6000만, 사망자 514만, 치명률 2%.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의 현재 상황판이다. 다행히 백신이 개발돼 일상으로 돌아간 나라들이 많지만 팬데믹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같은 다른 전염병들도 나돌았지만 코로나19처럼 초대형 재앙(doom)은 아니었다.

『둠-재앙의 정치학』은 코로나19처럼 그동안 인류사회를 위협한 수많은 재앙을 역사적으로 되돌아보고 앞으로 닥칠 또 다른 재난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책이다. 경제사학자인 지은이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 책에서 페스트, 티푸스, 콜레라 등 전염병 팬데믹뿐만 아니라 베수비오 화산 폭발,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같은 지질학적 참사, 세계 대전 등 지정학적 참사,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기술적 참사 등 천재(天災)든 인재(人災)든 온갖 종류의 재앙과 재난들을 광범위하게 다뤘다.

지난 9일 마스크를 쓴 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거리를 걷는 시민들. 우크라이나는 기록적인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 마스크를 쓴 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거리를 걷는 시민들. 우크라이나는 기록적인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동시대인들이 오랫동안 반복해서 예측했던 사건이나 재난을 ‘회색 코뿔소’라 한다(미셸 부커).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8년 금융위기, 2007년 미네소타주의 교량 붕괴, 사이버 공격, 산불, 수자원 부족 사태 등과 같이 위험하고, 자명하고 발생 확률이 높은 무언가를 지칭한다. 1차 세계대전, 코로나19처럼 뻔한 예측이 가능하지만 막상 닥치고 나면 그 피해가 엄청나 대단히 놀라운 사건은 ‘검은 백조’라 부른다(나심 탈레브). 이들은 일상적인 확률적 정규분포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 사망자 규모가 너무나 엄청나서 다른 재난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은 ‘드래건 킹’이라 한다(디디에 소네트). 재난의 역사는 곧 회색 코뿔소, 검은 백조, 드래건 킹으로 가득한 동물원을 엉망으로 관리한 역사이기도 하다.

팬데믹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바이러스 외에 사회적 네트워크도 있다. 인간의 네트워크는 더 많은 노드(연결점)와 연결망을 가진 다중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바뀌고 있다. 현대 세계는 오만 가지의 무작위 확률추론적 형태, 비선형적 관계들, 극단적으로 확률이 낮은 값들의 발현 빈도가 더욱 높은 팻테일(fat-tail) 분포들에 지배되는 복잡계의 성격을 갈수록 더 크게 띠어간다. 바이러스 자체만 아무리 연구해 본들 감염의 규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것은 오직 사회적 네트워크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염병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접종이나 치료제 등 의학적 개입이 아닌 비의학적 개입이 중요하다. 중세 페스트 대유행 때도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봉쇄 조치, 건강증명서 발급, 재난 지원 등으로 대처한 역사가 있다. 정보기술과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빠르게 변화할 국제적 지역적 네트워크를 간과한다면 또 다른 전염병과 재앙을 효과적으로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류의 재난에는 마침표가 없다.  재난을 예측하는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 사회에서 재난은 반복될 것이다. 당장만 해도 기후변화로 전 세계인들이 이상 고온, 산불, 홍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를 더 큰 규모로 더 자주 고통받고 있다. 날로 격화하고 있는 미·중 간의 지정학적 갈등과 패권경쟁은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시한폭탄으로 우리 곁에서 째깍거리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성공은 항상 더 어려운 문제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손에 쥐여줄 뿐이다”고 했다. 중국의 문을 열었던 미국은 이제 중국과 2차 냉전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받고 말았다.

선진화된 정치 시스템이나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다음에 찾아올 재난을 완벽하게 대응하기는 불가능하다. 지은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회복재생력을 갖춘 구조, 그리고 가능하다면 재난을 버텨 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는 앤티프래절(anti-fragile)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완벽한 대처보다는 호들갑을 떠는 재빠른 대처가 회복을 위해 최선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재난의 위기에 당면해 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앤티프래절 사회로 거듭날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해야 할 때다. 이 책은 파멸을 피해 그 길을 갈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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