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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 ‘향수’ 애창곡 만든 큰 업적, 꿈엔들 잊힐리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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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26면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39〉이동원 추모음악회

지난 22일 서울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가수 이동원 추모음악회 무대에 오른 조영남씨. 암 투병을 하던 고 이동원씨를 돕는 모금 음악회로 계획됐으나 14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는 바람에 추모음악회로 바뀌어 열렸다.

지난 22일 서울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가수 이동원 추모음악회 무대에 오른 조영남씨. 암 투병을 하던 고 이동원씨를 돕는 모금 음악회로 계획됐으나 14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는 바람에 추모음악회로 바뀌어 열렸다.

동원아! 이상한 편지를 쓰게 됐다. 넌 며칠 전에 죽었고 죽은 후배한테 첨으로 편지를 쓰게 돼서 그렇다. 거기 사정 여기 사정 다 줄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동원이 너 크게 유명한 것 같진 않더라. 내가 사람들한테 이동원이가 죽었다고 하니까 모두가 이동원이 누구냐 하길래 내가 길게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하는 노래 ‘향수’를 시작하면서 이 노랠 박인수라는 성악가와 함께 노래한 사람이라고 해야 아아! 그 사람 할 정도니 말야 하하하! 니가 TV에 한참 안 나왔다는 뜻이겠지.

본격적인 얘기는 니가 전유성네 집에서 머물던 너 죽기 삼일인가 사일 전쯤 시작된다.

동원아! 그 전에 먼저 니 얘길 빌려서 내가 쓰는 중앙SUNDAY 연재에 한 판 써먹는 것을 너의 아량으로 이해 좀 해주길 바란다. 하여간 동원아, 그날 꼭두새벽 전화가 걸려왔어. 자기가 방송인 정덕희래. 내가 TV에서 많이 들었던 이름이지. 그러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아니길래 어떻게 날 찾았느냐 물었더니 자기가 한때 명지대 교수였고 내 친구 유영구 전 명지대 이사장한테 나의 전화번호를 알았대.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일이래. 그래서 당장 우리집으로 오라고 했지. 멋진 친구 한 명과 우리집 응접실에 마주 앉았지. 뭐냐 물었더니 니 얘길 하면서 이동원이가 식도암 말기래. 그러면서 내 조영남이라는 이름을 빌려 이동원 병원비 모금음악회를 열면 어떻겠느냐, 그걸 허락받기 위해 달려왔다는 거였어. 나는 깜짝 놀랐지. 그런 소식을 가수나 방송 계통 사람들한테 듣지 않고 뜬금없는 정덕희라는 여자한테 듣는 것도 머쓱했고 니가 전유성네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얘기도 그때 들었어. 물론 나는 좋은 생각이니 후원음악회 날짜를 잡고 몇 명 연예인을 더 섞어 뜻있는 음악회를 해보자고 약속을 하고 공연 날짜까지 조정하고 헤어졌지.

정지용, 엘리엇·보들레르 능가한다 생각

생전 이동원씨가 조영남씨와 ‘향수’를 같이 부르는 방송 캡처 화면. [사진 조영남]

생전 이동원씨가 조영남씨와 ‘향수’를 같이 부르는 방송 캡처 화면. [사진 조영남]

그런데 이틀인가 지나 꼭두새벽에 정덕희한테서 문자가 왔어. ‘이동원씨가 소천했습니다.’ 나는 소천(召天)이 죽었다는 뜻이라는 것도 그날 새삼 알았다. 내가 즉시 전화로 그럼 이동원 후원음악회는 어쩔 것이냐고 했더니 차분하게 대답하더라. 추모음악회를 하면 된다고.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것도 좋겠다 싶어 그렇게 하자고 했다. 어느새 기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오고 윤형주 임희숙 김도향 임지훈까지 합세했다는 얘기도 들었어. 그리고 기자한테 추모음악회의 의미를 대강 설명해줬단다.

거듭 말하지만 이 편지는 중앙SUNDAY 독자님들과 함께 읽는 공개편지다. 이제부턴 내 얘기를 하마. 내가 왜 너를 위한 후원음악회 추모음악회에 선뜻 나섰냐. 그 이유를 말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동원이 너 덕분에 나는 가수 말년에 잘 먹고 잘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마도 동원아! 적어도 내가 지구상에서는 너보다 더 많이 ‘향수’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내 음악회가 있을 때마다 끝부분에 ‘향수’를 부른단 말야. 그게 둘이 부르는 이중창이니까 그때그때 출연하는 가수 중에 높은 소리가 잘 나는 테너가 있으면 내가 이동원 역을 맡고 낮은 소리가 나는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있으면 내가 박인수 형 흉내를 내서 부르곤 한단 말이다. 왜 그렇게 하냐. 나는 네가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정지용 작사 김희갑 작곡 ‘향수’라는 노래의 광팬이란 의미다. 그래서 늘 ‘향수’를 부르게 된다는 얘기다.

동원아! 니가 죽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동원아! 넌 긍지를 가져라! 너는 대한민국 근대 음악사를 통틀어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거야.

동원아! 우선 너는 우리 한국인이 거의 잘 모르던 정지용이라는 시인을 발견해낸 것부터가 엄청난 공로자이고, 거기다 정지용의 서정시 ‘향수’를 발견해 그걸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하는 최진희의 노래 ‘사랑의 미로’를 만든 대중가요 작곡자에게 부탁한 것도 엄청난 일이고, 이어서 일반인의 목소리와 성악가의 목소리를 절묘하게 섞은 노래로 만들어 전 국민의 애창곡으로 만든 장본인이란 말야. 실로 엄청난 업적이지. 네 제작력으로 만들어진 ‘향수’가 애창곡을 넘어 위대한 클래식 가곡이 되어 버린 것도 바로 이동원 네가 꾸민 일 아니냐.

나도 평소 정지용의 시 ‘향수’를 꽤 괜찮은 서정시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KBS의 ‘열린음악회’에서 성악가와 함께 부르도록 ‘향수’라는 노래를 익혀오라고 해서 악보를 구해 살펴보게 됐어. 동원아! 넌 이해할 거다. 내가 그 시를 읽고 감동, 감동한 나머지 3일간이나 내 방에 들어가 문 잠그고 혼자 울었으니까. 동원아! 사실 나는 몇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여자 때문에 통곡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어. 그만큼 사랑의 아픔도 모르는 놈이 ‘제비’ 같은 노래를 불렀으니 오죽했겠냐. 그래서 나는 늘 나 자신을 짝퉁 아티스트, 짝퉁 가수라고 믿어왔는데 ‘향수’를 읽고는 3일간이나 연속으로 통곡은 아니지만 통곡 이상으로 흐느껴 울었으니 형의 마음을 이해하겠지. 그때부터 나는 정지용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지난 3월 이 지면에서 일찌감치 밝힌 바 있지만 정지용이 김기림 백석과 함께 서양의 T S 엘리엇이나 보들레르, 랭보, 워즈워스, 에드거 앨런 포를 능가하는 세계 초A급 시인이라는 걸 확인하게 됐단다.

동원아! 넌 영남이 형이 웬일인가 하겠지만 나는 사실 그때는 이미 현대시에 깊숙이 개입해 있을 때였어. 넌 믿지 않겠지만 난 그때 이미 모던시(詩), 난해한 시를 쓰기로 유명한, ‘오감도’를 쓴 시인 이상(李箱)을 연구하면서 이상이 남겨 놓은 난해한 시 100여 점을 몽땅 해설하는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의 원고를 조금씩 늘려가던 때였단다. 네가 정지용을 발견했듯 나는 이상을 발견했던 거지.

조영남씨가 최근 제작한 추모 작품. [사진 조영남]

조영남씨가 최근 제작한 추모 작품. [사진 조영남]

시인 이상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시에 결성되었던 구인회를 비롯 정지용·김기림 등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나는 특히 우리 이상 시인이 일본의 당시 유행을 타던 모던 현대시를 카피했을까 봐(일각에선 그런 의심의 눈초리가 실제로 존재했었음)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시들을 손에 닿는 대로 몽땅 수집해서 살펴봐야만 했고 끝내 우리의 이상, 몸에서 피를 쏟는 결핵환자 시인 이상이 일본이나 서양의 아류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 거란다. 특히 나는 정지용에 대해 남다른 애착심이 생겼고 이상에 이어 우리 정지용은 어떤 수준에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한국말 번역서 『세계의 명시』(종로서적, 김희보 편저)를 펴놓고 “사월은 잔인한 달” 어쩌구 하는 T S 엘리엇 등을 읽은 것을 비롯, 내가 미국 플로리다에 살 때 오하이오주 털리도에 거주하던 내가 닥터 지바고에 빗대 마바고라는 별명을 붙인 마종기 시인과 가까워져 그분과 친구가 되고 싶어 시 공부를 디립다 하기 시작했거든. 그때 꽤 두꺼운 시 입문 전문서적을 독파한 적도 있고. 여하튼 그 유명한 T S 엘리엇의 ‘황무지’는 우리 쪽 김지하 형이 쓴 ‘황톳길’에는 게임이 안 되게 재미없는 시라는 것도 알게 됐지. 나는 거기에 나오는 중국시, 일본시, 영국시, 프랑스시, 독일시, 미국시, 인도시 등을 모조리 읽어 가면서 비교 분석해 나갔어. 특히 이름이 크게 난 보들레르, 랭보, 예이츠, 타고르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다가 깜짝 놀랐단다.

동원아! 내가 뭐에 놀랐는지 아니? 너는 시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만(야! 왜 우리가 그때 함께 둘러앉아 세계 서정시에 대해 얘기를 한 번 못 한 게 참 안타깝구나) 난 그렇게 마구잡이식으로 공부하면서 깜놀한 게 있어. 워즈워스구 에즈라 파운드구 뭐구 정지용 만한 서정시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게 됐단다. 이 기사를 연희동의 김동길 박사님이 읽으시면 나는 작살나겠지만 하여간 내 공부 결과는 그랬어. 말이 나온 김에 세계에서 현존하는 시 암송 최고의 달인은 김동길 박사이시다. 지금도 세계의 명시 특히 영어로 된 시 수십 편을 좔좔 막힘 없이 정확히 암송해 내시니까 내가 깜짝 놀라 자빠질 수밖에 없지. 그때 내가 공부한 바로는 우리의 정지용이나 김기림 백석 같은 분들은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세계를 넘어 우주적 시인에 속하는 탁월한 시인들이었단다. 슬쩍 얘기하자면 내가 평생 숭배했던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를 쓴 건축 전공 출신 이상은 우주보다 더 높은 맨 꼭대기 층에 올라 계신 분이었고.

각설하고 동원아! 니가 뭘하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시 중에서도 정지용의 시 ‘향수’를 찾아낸 것, 그리고 적절한 라임도 무시된 한 없이 긴 시를 ‘사랑의 미로’를 쓴 대중음악 작곡가 김희갑 선배한테 부탁한 것, 그리고 특히 영남이 형의 서울음대 직계 선배 박인수 형한테 맡긴 것도 단연 신의 한 수였어.

이동원·박인수 듀엣으로 ‘향수’ 불러 히트

동원아 거기서 두고 봐라. 예의 주시해봐라! 언젠가 ‘향수’는 틀림없이 세계적인 명곡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모든 건 운이 따라주는 것과 재수가 좋아야 하는데 한때 내가 재수교 교주(?)라서 그랬는가. 내가 너와 함께 ‘향수’를 부른 게 재수 좋게 유튜브에 남아 있더구나. 그래서 네 추모음악회 맨 끝에 그걸 벽면에 비치면서 거기에 나오는 반주에 맞추어 그 자리에 모인 가수 전부가 앞에 나가 그날 오신 손님 전부와 함께 ‘향수’를 합창하기로 최종 결정을 봤단다.

그런데 동원아! 지금 죽어 있는 이동원! 끝으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게. 이건 니가 지금 죽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형의 투정 같은 거다. 너 살아 있을 땐 차마 그 말을 못했어.

동원아. 그때 너 나한테 서운한 감정 있었니. 나쁜 시캬. 넌 왜 그때 영남이 형은 생각을 못 했냐. 왜 나를 빼고 멀리 있던 박인수 형을 찾았냔 말이다. 아! 평생 앙심 품었던 걸 이제야 털어놓으니 시원하구나.

동원아! 널 위한 추모음악회가 낼모레(22일 6시)다. 이 편지는 그 닷새 후 토요일 아침 신문에 나간다.

동원아! 거기서 만난 배호 선배, 남보원 선배, 백남봉 선배, 살아서 못 만났던 김현식, 김정호, 유재하, 친할 새가 없었던 김광석, 나의 장례식용 노래 ‘모란동백’을 근사하게 편곡해준 김명곤 같은 녀석들 만나면 영남이 형이 얼마 안 있어 꼭 올 거라고 말 전해주라.

동원아! 죽은 내 후배 가수 동원아! 거기도 넓은 들판이 있고 실개천 같은 게 있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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