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바위에 구멍 수천 개, 납봉 수백 개…거문도야 울지 마라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7 00:02

업데이트 2021.11.2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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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02면

‘거문도의 눈물’ 그 후 1년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지난 5일 선박 302호에서 내려 거문도 갯바위에서 정화 활동 중이다. 김홍준 기자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지난 5일 선박 302호에서 내려 거문도 갯바위에서 정화 활동 중이다. 김홍준 기자

“이 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지난해 7월,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퍼진 말이다. ‘이 섬’은 동양의 지브롤터로 불렸다. 해양자원의 보고(寶庫)이다. 하지만 갯바위에는 드릴로 구멍이 수천 개 뚫린 섬, 바위틈에는 납덩이가 수백 개 박혀 있는 섬, 바닷속과 해안은 각종 쓰레기로 얼룩진 섬이기도 하다. 이 섬은 전남 여수 거문도다.

중앙SUNDAY 2020년 7월 18일자.

중앙SUNDAY 2020년 7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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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에서는 중앙SUNDAY ‘포커스-거문도의 눈물〈2020년 7월 18일 자·사진〉’을 본 뒤 대책을 강구했다. 본지는 거문도에서의 과도한 낚시행위로 인한 갯바위의 손상과 해양생태계 피해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 15개월 넘는 기간 동안 거문도에는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본지 고발로 실태 조사 뒤 대책 강구

“야, 이건 난공사다.”

지난 5일 오전. 배재성(58) 거문도 낚시협회 회장은 거문도 서도의 갯바위 한 곳에서 20분 넘게 진땀을 흘렸다. 불에 녹아서 바위를 뒤엎은, 해물파전 접시만 한 플라스틱을 제거하느라 씨름 중이었던 것. 정승준 국립공원공단 해상해안보전실 실장은 “낚시인들 일부가 이곳에서 불을 피우면서 남기고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은 ‘거문도 갯바위 생태 휴식제 1차 정화 활동’이 열렸다. 해안·해상·해중에서 전방위로 벌어졌다. 국립공원공단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거문도 주민 60여 명이 참가했다.

쓰레기 수거를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국립공원을 키는시민의모임' 다이버. 김홍준 기자

쓰레기 수거를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국립공원을 키는시민의모임' 다이버. 김홍준 기자

배성우(54) 국시모 집행위원장은 20분간 바닷속에서 납·통발·어망·술병 등 쓰레기를 한가득 안고 올라왔다. 배씨는 “타이어도 있는데, 중장비를 동원해서 건져 올려야겠다”고 밝혔다. 스쿠버다이빙 단체 PADI의 코스 디렉터인 윤재준(51)씨를 비롯한 다이버 16명은 국시모와 함께 해중 정화 활동에 참여했다. 윤씨는 “쓰레기와 산호가 공존하는 거문도 바닷속을 보면, 아직도 희망이 있기에 섬을 지키려는 노력이 더 간절하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공단 20t급 ‘선박 302호’는 목포에서 내려와 정화 활동에 참여했다. 직원들이 배에서 내린 갯바위 곳곳은 모두 ‘낚시 포인트’다. 동시에 ‘훼손 포인트’이기도 하다. 2㎡ 안에 드릴 구멍이 20여개 뚫린 곳도 있다. 납봉도 바위 곳곳에 박혀 있다. 일부 낚시인들이 남긴 구멍과 납은 낚싯대를 고정하기 위한 것이다. 바위가 갈라지고, 어류 중금속 축적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우려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지난 3년간 수거한 납은 3t이다. 김광균 국립공원공단 차장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료(바이오폴리머)로 구멍 뚫린 바위를 메웠다. 김 차장은 “자갈과 피마자유 등을 써서 환경 복원을 하는 기술인데, 해조류가 이 위에서 서식할 정도”라고 밝혔다.

거문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다도해·태안·한려 세 곳의 해상국립공원과 사실상 해상 일부를 가진 변산반도국립공원을 합하면 전국 국립공원 면적(6726㎢)의 절반가량이 해상해안 지역이다.

지난 5일 거문도 정화 활동 중 수거한 납. 김홍준 기자

지난 5일 거문도 정화 활동 중 수거한 납. 김홍준 기자

육상 국립공원과 달리 해상해안 지역은 접근이 어렵다. 때문에 ‘거문도의 눈물’ 보도 후 국립공원공단은 인력 확충부터 착수했다. 해상국립공원의 환경 업무를 총괄할 공단 내 실무 담당을 ‘부’에서 ‘실’로 승격시키고 실무 인원도 5명에서 9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기동력을 확보해줄 선박도 현재 7척에서 내년 2척을 추가할 계획이다. 공단 관계자는 적정 선박 수를 15척으로 보고 있다.

거문도 갯바위에서 정화 활동 중인 국립공원공단 직원들. 김홍준 기자

거문도 갯바위에서 정화 활동 중인 국립공원공단 직원들. 김홍준 기자

중앙SUNDAY가 지난 2020년 7월 보도한 '거문도의 눈물' 이후 국립공원공단에서는 '거문도 갯바위 생태 휴식제'를 도입하면서 갯바위 곳곳에 13개의 안내판·.기둥을 설치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안내판·.기둥이 많으면 계도 효과는 높겠지만, 그만큼 자연이 훼손될 수 있어 크기와 갯수를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중앙SUNDAY가 지난 2020년 7월 보도한 '거문도의 눈물' 이후 국립공원공단에서는 '거문도 갯바위 생태 휴식제'를 도입하면서 갯바위 곳곳에 13개의 안내판·.기둥을 설치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안내판·.기둥이 많으면 계도 효과는 높겠지만, 그만큼 자연이 훼손될 수 있어 크기와 갯수를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그리고 지난 2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거문도와 백도 일대 25개 지점에 대한 환경 조사에 착수했다. 낚싯대 고정용 납의 밀도가 10㎡당 8.3개로, 한려해상국립공원 거제·통영 일대 같은 면적(10㎡당 3.2개)의 2.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왔다. 낚시인,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지난 9월 13일부터 한 달간 ‘거문도 갯바위 생태 휴식제’를 시범 운영했다. 한 달 뒤인 10월 13일부터 1년간 본격 실시에 들어갔다.

갯바위 생태 휴식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오염·훼손된 갯바위에 일정 기간 출입을 통제하는 동시에 복원·정화 활동을 통해 자연 치유를 유도하는 제도다. 거문도 세 개의 섬인 고도·서도·동도 중 서도의 북쪽 6.5㎞, 남쪽 3.5㎞ 갯바위 구간이 대상이다. 위반 시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거문도 갯바위에 박힌 납봉. 김홍준 기자

거문도 갯바위에 박힌 납봉. 김홍준 기자

한 달간 시범 실시가 시작된 9월 13일은 월요일이었다. 낚시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낚시인들은 “마지막 돌돔”이라며 직전 주말인 9월 11, 12일 거문도에 몰려갔다고 한다. 거문도에 왜 낚시인들이 몰릴까. 경기도 고양시에서 낚시 장비를 취급하는 박모(50)씨는 “거문도 바다는 참돔·돌돔·벵에돔·감성돔 등 사시사철 120여종의 어류를 낚을 수 있는 어종의 보고”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거문도에서의 해상 낚시는 물론 휴식제를 적용하지 않은 갯바위에서는 낚시가 허용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동도 등 다른 포인트로 낚시인들이 몰리는 풍선효과를 우려한다. 거문도 주민들은 애초에 “거문도 갯바위 전체를 휴식제로 묶자”고 주장해 왔다. 배재성 회장은 “우리 삶의 터전이자 일터인 이 섬이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이유도 있다. 한 낚시업계 관계자는 “낚시인들이 여수와 고흥에서 배를 빌린 뒤 거문도로 들어가 선상·갯바위 낚시를 하고 이동하는 게 비용상·시간상으로 편하기 때문에, 거문도에서 직접 배를 빌리고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줄었다”며 “이처럼 섬에는 아무런 경제적 도움도 안 주고, 일부 낚시인들이 구멍 뚫고 납 버리고 쓰레기 남기고 가니 누가 좋아하겠나”고 꼬집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생태 휴식제 적용을 놓고도 거문도와 여수·고흥 낚시 관계자들이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친환경 재료로 메운 바위에 해조류 서식

지난해 7월 취재 중 낚시인이 있던 거문도 소원도(사진 위), 현재 소원도에는 갯바위 생태휴식제 안내판이 설치 돼 있다(사진 아래). 김홍준 기자

지난해 7월 취재 중 낚시인이 있던 거문도 소원도(사진 위), 현재 소원도에는 갯바위 생태휴식제 안내판이 설치 돼 있다(사진 아래). 김홍준 기자

당국은 거문도에서의 낚시를 한꺼번에 전면 통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했다. 900만 명에 육박하는 낚시인들이 가거도·추자도와 함께 ‘3대 어장’으로 꼽는 이곳에 부분 생태 휴식제를 도입한 뒤, 제도 적용 구간을 교체·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여수·고흥 낚시 관계자들도 거문도 환경 피해의 심각성을 알고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거문도 관계자들도 100% 갯바위 낚시 제한 대신 한발 물러났다. 서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면서 합의를 본 것이다.

정인철 국시모 사무국장은 “갯바위 휴식제는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 제시와 절충, 합의가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정승준 국립공원공단 실장은 “장기간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 해상해안 환경을 살리는 미래 완료형 휴식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송형근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갯바위 생태 휴식제는 국민과 낚시인들의 미래를 위한 숨 고르기”이라며 “효과를 면밀히 분석·평가하여 다른 섬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생태 휴식제 도입 후 첫 정화 활동에서 수거한 납만 해도 20㎏에 달했다. 바닷속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70㎏이었다. 특허 기술로 메운 구멍은 200여 곳에 달했다. 김종명 국립공원공단 과장은 ‘선박 302호’에 쌓인 납과 쓰레기를 보고 말했다. “어, 참 속이 시원하다.” 울고 있던 그 섬은 지금 눈물을 닦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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