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檢 이첩사건은 묵히고…친여단체 고발사건엔 '올인'

중앙일보

입력 2021.11.26 05:0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의 갈등이 공수처 출범 300일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출범 초기 ‘조건부 이첩’으로 촉발한 양측의 다툼은 최근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이 불법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보하며 정점에 달했다. 그 사이 공수처는 검찰이 이첩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과 연관된 현직 검사 관련 사건은 길게는 8개월이 넘도록 처리를 미루고 있는 반면, 친여(親與) 성향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 수사는 속도를 내면서 정치 편향성 우려를 자초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와 검찰의 질긴 악연의 시작은 지난 3월이었다. 지난 1월부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출국금지(출금) 및 수사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이던 수원지검 형사3부는 불법 출금 혐의를 받던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와 수사 무마 혐의 피의자 이성윤 고검장 등을 지난 3월 3일 공수처로 이첩했다. 현직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 발견 시 사건을 공수처로 넘겨야 한다는 공수처법에 따라서다. 그러나 공수처는 같은 달 12일 이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돌려줬다. 그러면서 “수사 후 송치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이는 현직 검사의 범죄 혐의에 대한 기소 판단은 공수처의 몫이니 수사만 하고 넘기라는 취지였다. 이에 형사3부장이던 이정섭 부장검사는 “듣도 보도 못한 해괴망측한 논리”라고 공개 반박하며 이들에 대해 수사 후 기소를 직접 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회 답변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사법부의 판단, 법원이나 헌재의 판단으로 유효한지 적법한지가 가려질 문제”라고 맞섰지만, 불법 출금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선일)는 일단 검찰 손을 들어줬다. 지난 6월 15일 이규원 검사,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에 대한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제기가 위법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재판을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다.

공수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지난 3월 17일 수원지검과 같은 이유로 이첩한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허위작성·유출 및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이른바 ‘청와대 기획 사정(司正)’ 의혹 사건도 8개월이 넘도록 처리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25, 27일, 6월 1일 이 검사를 소환조사하고, 지난 7월 이 전 비서관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이후 수사기록은 공수처 캐비닛에 잠들어 있다. 지난 5월 수원지검이 이 고검장을 기소한 뒤 공수처로 이첩한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이현철 서울북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 배용원 서울북부지검장 등의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의혹도 사실상 수사가 멈춘 상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왼쪽부터)이 지난달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왼쪽부터)이 지난달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공수처는 지난 6월 이 고검장 사건 관계인으로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김형근 부천지청장 등 검사 3명에 대해서도 ‘중복 수사’에 해당한다며 수원지검에 이첩을 요구했다. 이후 정식 사건번호를 부여해 입건하고 자체 수사를 이어오고 있지만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전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공수처는 지난 상반기에 수사팀 및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관련 사건들에 대해 이첩을 받았는데도 6~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아 실체 진실 발견과 관련 공판 수행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25일 현재 공수처가 입건한 23개의 사건 중 최소 5건은 친여 성향의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연대가 고발한 사건으로 대부분의 수사력이 이들 사건에 집중돼 있다. ‘이성윤 공소장 유포’ 사건 외엔 전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피의자 명단에 포함된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의 옵티머스 펀드사기 사건 부실수사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판사사찰 문건 작성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 사주’ 의혹 등이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만 해도 공수처가 대검 감찰부·수사정보담당관실·정보통신과 등을 네 차례나 압수수색했다. 이 때문에 검찰 안에서는 “공수처가 대검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데도 검찰총장이 ‘끽’ 소리 못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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