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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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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김현예 P팀장

“잠깐, 이게 뭐야?” 펜을 들고 시험지를 받아본 한 남학생이 머리를 잡았다. 한국의 수능 외국어 영역 기출문제를 풀어보던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자신 있다”고 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구독자 443만 명을 자랑하는 유튜브 ‘영국남자’에 올라온 영상이다. 수능 영어에 도전한 건 영국 풀햄 고등학교 고3 남학생들. 10분을 줬지만 끝내 한 학생은 1번 문제를 넘기지 못했다.

“이거 말이 안 되는데요. 지문이 말이 안 돼요!” 지문을 읽어 내려가던 학생들은 연신 허탈해했다. “제가 영어를 진짜 아는지 의심스러워요.” 정해진 10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시는 안 하고 싶다. 이게 진짜 영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아니에요. 이런 시험은 어떻게 공부해요? 영어를 매일 쓰는 저희도 절절매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읽어요”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결국 학생들이 선택한 건 무엇이었을까. ‘찍기’였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들마저 ‘운명’에 맡기겠다며 찍기를 선택하게 한 수능. 그 시험이 끝난 지 1주일여 만에 이번엔 교육부가 새 교육과정을 내놨다. 오는 202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에게 적용하고, 2025년부터는 중·고등학생에게 도입되는 교육 정책으로 내년 하반기에 최종 확정, 고시될 예정이다. 중학생은 1학년에 자유학기, 3학년 2학기엔 진로연계 학기를 보내게 되고, 고등학교는 ‘학점제’로 달라진다.

교실 풍경도 바뀐다. 국어와 영어, 수학의 비중이 줄어든다. 이 새 과정에 따라 오는 2028학년도부터 대입제도도 달라지는데 정부 말대로라면 ‘미래형’으로 바뀐다. 유은혜 교육부총리 말에 따르면 “관심과 흥미를 고려한 개별 맞춤형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평가하고 대학에 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새 교육 과정을 접한 부모들의 반응은 뜨악하다. “국어·영어·수학을 줄이면 결국 학원 가서 배우라는 말이냐”고 입을 모은다. 지금도 학원, 과외에 돈을 쏟아붓는데 학교에서조차 공부 시간이 줄면 교육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미래형으로 교육을 바꾼다는데, 아이들의 현실은 ‘시험을 위한 시험’에 진을 빼는 데 머물러 있다. “어차피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 학교는 왜 가냐”는 학생들의 자조 섞인 말은 이제 그만 들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