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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층간소음 원인 '벽식 구조' 아파트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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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요 며칠 영화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우리네 현실이 전해지고 있다. 인천시 한 빌라에 사는 40대 남성이 아랫집 60대 부부와 20대 딸 등 일가족에 흉기를 휘둘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몇 개월 전 위층으로 이사 온 이 남성이 60대 여성을 흉기로 찔렀는데, 출동한 경찰들이 현장을 벗어나는 바람에 딸과 남편이 맨몸으로 대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참극의 원인은 층간소음이다.

 흉기로 윗집 초등학생 위협까지

 이뿐 아니다. 경남 양산에선 112에 전화를 걸어 층간소음을 이유로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고 예고한 30대 남성이 응급 입원 조치됐다. 빌라에 사는 이 남성의 주머니에서 실제로 커터 칼날 등 흉기가 나왔다. 제주에서도 새벽에 발생한 층간 소음에 불만을 품고 위층에 사는 7살 초등학생을 흉기로 위협한 30대 남성이 구속됐다.

 층간소음이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살인이나 흉기 협박으로까지 번질 지경이면 얘기가 다르다. 한국은 아파트나 다가구주택 등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70%에 육박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고 외부 활동이 줄면서 층간소음 갈등도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웃 간에 이사 떡 돌리던 풍습은 옛말이 됐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위아래 집 사이에 신경전을 벌이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은 이사 간 아파트 아랫집에 또래 아이가 있거나, 또래 손자를 둔 노부부가 살면 행운이라 여긴다. 어느 정도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에서다. 반면 소음이 심하다는 의견을 정중히 전해도 변화가 없다고 느낀 아래층 사람들의 성토도 거세다. 자녀가 거실에서 뛰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층간소음에 무감각하다는 비판을 받은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다.

 이쯤 되면 층간소음 문제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소음을 줄이려 매트를 까는 집이 많은데도 아랫집 찬장이 흔들리고 소음이 줄지 않는 이유가 있다. 아파트 구조가 한몫한다. 분당·일산 등으로 대표되는 1기 신도시 건설 때부터 국내 아파트는 ‘벽식 구조’를 택했다. 아파트의 내력벽이 하중을 떠받치는 구조인데, 공사비가 저렴하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제 성장 속에 부족한 주택을 이런 형태의 아파트로 200만호가량씩 지어왔다.

 하지만 벽식 구조는 위층 소음이 벽을 타고 아랫집으로 전달되는 부작용이 있다. 심지어 벽으로 연결된 다른 층의 영향까지 받기 때문에 아파트 한 집에서 공사하면 같은 동의 떨어진 집까지 울린다.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 역시 겉모습만 멋져졌지 대부분 벽식 구조다. 서울 평균 아파트값이 12억원이라는데, 층간소음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기둥·보 '라멘 구조'에선 소음 감소

 이와 달리 ‘라멘 구조’로 아파트를 지으면 층간소음이 확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라멘은 독일어로 '테두리'를 뜻하는데, 수직으로 세운 기둥과 수평으로 지지하는 보가 하중을 버틴다. 공사 중인 고층 건물에서 철근 골격을 세우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라멘 구조는 '100년 가는 아파트'처럼 건물의 수명을 늘려주고, 벽을 허물어도 돼 원하는 구조로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외국에 내부를 수리한 고풍스러운 아파트가 많은 것은 라멘 구조로 짓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는데도 벽식 구조가 일반화한 것은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건설사들이 라멘 구조를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종시에 수명이 오래 가는 장수명 시범아파트를 선보인 국토교통부는 비장수명 아파트와 비교해 공사비가 3~6% 정도만 올라간다고 밝혔다. 빌라는 라멘구조로 짓는 경우가 많지만 건축비를 아끼려 슬래브 두께를 얇게 하는 바람에 층간소음을 잡지 못한다고 한다.

 건설사 동참 이끌 정책 세워야

 3기 신도시 건설을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은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등 라멘 구조 활성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아파트 층고 제한 완화 등을 추진 중인 서울시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대책에 층간소음을 줄일 방안까지 담을 필요가 있다. 이미 일부 재건축조합에선 라멘 구조 도입 움직임이 있다. 층간소음 없는 아파트가 고급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층간소음 갈등을 중재하는 기구가 있지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들이 많다. 소음을 측정할 때 윗집에 미리 통보하니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흉기 난동을 제압하지 못한 경찰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소음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파트 내 자율조정기구를 만들어 특히 조심할 시간대를 정해 공유하는 등 주민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정책 결정자들은 층간소음을 시급한 삶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칼부림까지 나 인명이 희생될 정도라면 이보다 더 화급한 사안이 어딨겠는가.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