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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 사장님 “시급 1만2000원 줄게” 알바생 “배달 할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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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막걸리집 사장 이상두(57)씨가 손님 응대를 위해 뛰고 있다. 양수민 기자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막걸리집 사장 이상두(57)씨가 손님 응대를 위해 뛰고 있다. 양수민 기자

“100명한테 일일이 전화했습니다. 제발 아르바이트 좀 와달라고요.”

지난 17일 서울 신촌 대학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63)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달 1일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손님은 돌아오고 있지만, 정작 손님을 맞을 알바생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구인 사이트에 구직자 열람 비용까지 내고 직접 전화를 돌려서 겨우 2명을 채용했다”고 말했다.

‘동네 알바생’이 사라지면서 자영업자가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일손은 갑자기 부족해졌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알바생이 ‘비대면 알바’로 발길을 돌리면서다.

서울 신촌 대학가의 한 24시간 카페의 구인 공고. 양수민 기자

서울 신촌 대학가의 한 24시간 카페의 구인 공고. 양수민 기자

알바생이 떠난 음식점엔 손님의 불평만 늘고 있다. 최근 25만원을 들여 알바 구인 광고를 새로 낸 서울 종로구 호프집 사장 김모(50)씨는 “200석 규모의 가게를 운영하려면 직원이 4, 5명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3명이 한다”며 “주문 벨을 계속 울려도 빨리 응대를 못 하니 손님도 화가 나고 매출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시급을 1만2000원까지 올려준다고 해도 연락이 안 온다”고 걱정했다.

알바를 구하지 못한 자영업자는 매일 고군분투 중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막걸리집을 하는 이상두(57)씨는 서빙·계산·주방까지 1인 다(多)역을 수행하고 있다. 손님에게 낼 전을 부치다 말고 막걸리를 가지러 뛰어가거나, 막걸리를 내려놓기 무섭게 다른 주문을 받는 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씨처럼 혼자 일하는 사장님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만6000명 감소한 반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만5000명 증가했다.

18일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한 호프집에서 사장 이명종(58)씨가 맥주를 채우고 있다. 알바를 구하지 못한 이씨는 서빙도 음식 도 직접 한다. 양수민 기자

18일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한 호프집에서 사장 이명종(58)씨가 맥주를 채우고 있다. 알바를 구하지 못한 이씨는 서빙도 음식 도 직접 한다. 양수민 기자

코로나 이후 알바생은 ‘감염 우려’와 ‘잘릴 우려’에 비대면·플랫폼 일자리로 넘어가고 있다. 대학생 방성현(25)씨는 “코로나 걱정에 대치동 학원 조교를 관두고 온라인 과외로 돌렸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이모(25)씨는 “코로나 때문에 일하던 매장이 두 개나 없어졌다”며 “어쩔 수 없이 비대면으로 하는 영어 번역 일을 늘렸더니 더 쏠쏠했다”고 했다.

실제 지난 10월 36시간 미만 ‘단시간 알바’ 중에선 교육 서비스업 취업자가 66만6000명 증가하며 제조업(99만40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늘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이 상대적으로 많은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44만9000명), 정보통신업(35만2000명)도 취업자 증가 폭이 큰 편이었다.

직원 둔 사장님 줄고, 나홀로 사장님 늘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직원 둔 사장님 줄고, 나홀로 사장님 늘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배달이나 택배 수요 증가로 운수·창고업의 단시간 취업자는 전년 같은 달 대비 18만3000명 증가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배달업 종사자는 42만3000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이 통계는 배달을 부업으로 하는 근로자를 포함하지 않아 배달 알바 등까지 포함하면 전체 배달원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에 비대면·플랫폼 업종과 달리 ‘전통적 자영업자’가 많은 업종에서는 좀처럼 취업자가 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숙박·음식업의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전년 같은 달 대비 5만7000명 늘어나 전체 증가분의 1.09%에 그쳤다.

전문가는 코로나19 이후 전통적 자영업자를 기반으로 한 고용 구조에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직자가 코로나 이전의 일자리로 복귀하기보다 비대면·플랫폼 업종으로 눈길을 돌리는 데다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까지 어려워지면서 일손 부족 현상이 심해졌다는 말이다.

주요 산업 ‘단시간 알바’ 증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주요 산업 ‘단시간 알바’ 증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김태기(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가 종식돼도 과거의 노동시장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춰 소상공인 전직·전업을 위한 직업교육 등 체계적 지원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면 고용 시장의 부진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선 코로나19 영향으로 어린이집 등 교육 서비스 운영이 차질을 빚으면서 수백만 명의 부모가 돌봄 공백으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인구조사국 가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자녀 돌봄을 위해 무급휴직·병가 등으로 노동조건을 조정한 성인은 700만 명에 이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2일 한 인터뷰에서 “보육 종사자와 교육자의 부족이 비정상적인 노동력 부족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동시에 근로자가 비대면 고용 시장으로 이동하는 경향도 심화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4일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 노동자 10명 중 1명이 앞으로 6개월 안에 본업을 그만두고 소셜미디어·전자상거래·플랫폼 등 비대면 시장에서 돈을 벌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국 등에서도 트레일러 기사가 부족해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다”며 “고용 시장이 대면 시장에서 비대면 중심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고강도·저임금 대면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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