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물티슈 4등분해 썼다" 서울대에 8억 유증한 90세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2021.11.25 05:00

업데이트 2021.11.25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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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대는 11월 23일(화) 관악캠퍼스에서 오세정 총장, 김영오 학생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순난 여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서울대 발전기금

서울대는 11월 23일(화) 관악캠퍼스에서 오세정 총장, 김영오 학생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순난 여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서울대 발전기금

이순난(90)씨는 물티슈를 4등분해서 쓴다. 한달 수도요금은 3000원을 넘지 않는다. 아끼는 게 습관이자 삶이었던 그가 거의 전 재산인 8억5000만원을 서울대에 내놨다. 지난달 서울대 발전기금을 통해 유증(유언에 의한 증여)하면서다.

서울대와 특별한 연고도 없이 ‘이순난 장학기금’의 주인공이 된 이씨는 “소원을 풀었다”고 했다. 기부를 결심한 이후 “아파서 해결을 못 하고 (세상을) 떠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매일 했다고 한다. 이씨는 “얼마 전에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도 내가 ‘기부는 어떡하냐’고 헛소리를 했다더라”며 웃었다. 이씨는 지난 23일 오세정 서울대 총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93세 해녀 할머니 기부 보고 결심

이씨는 지난해 제주도의 93세 해녀 할머니가 한 대학교에 1억원을 기부했다는 기사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감동이 기부로 실천되기까지 약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이씨는 서울대 발전기금에서 유언공증을 진행했다. 두 아들에게 나눠줄 일부와 본인이 살아생전 쓸 돈만 남기고 거주 중인 아파트와 예적금 등을 기부하기로 했다.

서울대를 기부처로 정한 이유에는 배움에 대한 이씨의 소망도 녹아있었다. 학교라는 곳을 다녀본 적이 없다는 이씨는 “서울대는 최고로 똑똑한 학생들만 가는 학교이니 여기서 국가에 이바지할 인재를 키워주면 한다”고 했다. 기부금이 잘 쓰일 수 있는 곳인지도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씨는 “제대로 관리하는 양반들이 있어야 한다”며 “아들이 서울대 발전기금 사이트를 보더니 잘 돼 있다고 해서 여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평생 장사로 돈 모아 가족 부양

24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만난 이순난(90)씨와 둘째 아들. 둘째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절약을 하면서 사는지 기자에게 설명했다. 정희윤 기자

24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만난 이순난(90)씨와 둘째 아들. 둘째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절약을 하면서 사는지 기자에게 설명했다. 정희윤 기자

이씨는 평생 힘들게 돈을 모아왔다고 했다. 유년시절 전쟁을 겪으며 부모를 잃고 먼 친척 손에 길러졌다. 이씨는 “일만 시켜먹고 공부도 안 가르쳐줬다. 그때부터 ‘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했다. 17세 때 빚을 내서 떡 장사를 시작했다. 10만원을 빌리면 2만5000원이 이자로 나가던 시절이었다.

떡 장사에 이어 옷, 화장품 등을 팔았다. 이씨는 “화장품 장사를 하면서 빚을 갚고 그때부터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정작 나는 (화장품을) 아무것도 안 바르고 다녔고 먹고 싶은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물티슈를 어떻게 한 장을 다 쓰냐”며 “가위로 4등분 해서 잘라서 사용한다”고 했다.

절약이 몸에 뱄다는 이씨는 “남들은 혼자 살아도 수도세가 1만원 나온다는데 나는 3000원 나온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그렇다고 더럽게 사는 건 절대 아니다”며 웃었다. 24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인터뷰 자리에 놓인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 맛있다”고 했다. 이어 “음식은 남겨본 적이 없다. (음식을) 남기는 게 제일 싫다”며 접시를 비웠다.

아들들 “우리 어머니지만 존경스럽다”

24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만난 이순난(90)씨와 두 아들. 정희윤 기자

24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만난 이순난(90)씨와 두 아들. 정희윤 기자

두 아들은 이씨의 결심을 지지했다. 이씨는 “기부 얘기를 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아들들은 어머니를 쳐다보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첫째 아들(68)은 “우리는 돈을 벌 수 있으니 평생 고생해서 버신 돈을 어머니 뜻대로 하셨으면 해서 서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의 둘째 아들(52)은 “어머니가 서울대에 입학하신 거라 생각한다”며 “세상을 떠나신 이후에도 어머니 이름으로 그 돈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듣고 우리 어머니지만 정말 존경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의 편지가 집으로 갈 수도 있다는 발전기금 측 말에 “아파트 우체통에 편지가 있으면 사람들이 다 보는 것 아니냐”며 “많은 액수도 아닌데 부끄럽다”고 겸손을 잃지 않았다. 이어 “(기부금이) 잘 쓰이면 내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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