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엔 "동지" 최고예우, YS엔 짧게 "애도"…中의 조문외교

중앙일보

입력 2021.11.25 05:00

지난 1994년 7월 베이징 주중 북한 대사관에 마련된 김일성 빈소. 장쩌민 당시 중공 총서기 겸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의 조화가 놓여있다. [중앙포토]

지난 1994년 7월 베이징 주중 북한 대사관에 마련된 김일성 빈소. 장쩌민 당시 중공 총서기 겸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의 조화가 놓여있다. [중앙포토]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별세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조의를 표했다. “우리는 전두환 선생의 사망(去世·거세)에, 그의 가족에게 진지한 위문을 표한다.” 총 71자.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없이 가족에게 “위문”만 표했다.

김일성 ‘위대한 친구’ 김정일에겐 ‘친밀한 친구’
스탈린 사망 땐 천안문에 영정, 60만 추모대회
올해 韓 전직 대통령 별세 조전 인민일보 미보도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때는 급이 이보다 높았다. “중국 측은 노태우 선생 서거(逝世·서세)에 깊은 애도를 표시하고, 그의 유족에 진지한 위문을 표한다.” 67자. 사망(去世) 대신 뉘앙스가 한 단계 정도 더 정중한 서거(逝世)라고 했다. 유족 외에 별도로 고인에 대한 “깊은 애도”를 덧붙였다.

중국은 예로부터 위계질서의 나라다. 이른바 ‘천자’를 정점으로 노비, 천민까지 같은 행위를 놓고 용어를 달리해 사용했다. 공자(孔子)는 글자 하나하나를 달리 써 평가를 차별화하는 미언대의(微言大義)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을 만들었고 그 전통은 여전하다. 현대에선 외국 지도자가 숨졌을 때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국익을 기준으로 다른 수위의 조전(弔電)을 보내고 무수한 등급의 조문 외교를 한다.

중국이 한국 전직 대통령 별세에 보내온 조전은 2009년 고 김대중 대통령을 정점으로 계속 내려가는 추세다. 이에 앞서 2006년 고 최규하 대통령 서거에는 별도의 공식 발표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엔 “공헌 잊을 수 없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다음 날인 2009년 5월 24일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노무현 선생의 불행한 사망에 안타까움과 애도를, 가족에게 깊은 위문을 표한다”며 “노무현 선생은 한국 대통령 재임 기간 한·중 관계 발전을 중시했고, 중국 정부와 인민은 그가 한·중 관계의 전면적 발전을 추동한 적극적 노력과 중요한 공헌을 잊을 수 없다”며 91자로 조의를 표했다. 단 최고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 명의의 조전은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땐 “오랜 친구”  

석 달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전의 격식이 높아졌다. 현 주미 중국대사인 친강(秦剛) 당시 대변인은 서거 당일인 18일 “한국 전 대통령인 김대중 선생이 불행히 병으로 돌아가신 데 깊은 애도를, 유족에게 진지한 위문을 표한다”며 “김대중 선생은 중국 인민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로 생전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했으며,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이를 잊을 수 없다”고 애도했다. 107자.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각각 당시 이명박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조전을 보냈다. 23일 국장 당일에는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정부 특사 겸 조문 사절로 방한, 국장에 참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엔 짧게 “애도”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서거 이틀 뒤인 24일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김영삼 선생은 대통령 재임 기간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공헌했다”며 “우리는 김영삼 선생 서거에 애도를 표시한다”고 짧막한 조의를 표하는 데 그쳤다. 40자. 국장이었지만 중국측 조문 사절은 없었다.

올해 한 달 사이로 노태우, 전두환 두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중국 외교부는 각각 “서거에 깊은 애도”, “사망과 가족에 진지한 위문”을 표했다. 노태우 대통령 유족에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명의의 조전도 전달됐다. 하지만 중국 당 기관지 인민일보엔 시 주석이 노 전 대통령 유족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조전은 보냈지만 기록에 남기길 원하지 않을 때 중국이 쓰는 방법이다.

지난 2011년 12월 20일 후진타오(가운데) 중국공산당 전 총서기가 베이징 주중 북한 대사관에 마련된 김정일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뒷쪽 김정일 사진 밑으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보인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011년 12월 20일 후진타오(가운데) 중국공산당 전 총서기가 베이징 주중 북한 대사관에 마련된 김정일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뒷쪽 김정일 사진 밑으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보인다. [신화=연합뉴스]

반면 북한 지도자 김일성·김정일 사망 당시 펼친 조전·조문 외교에는 최고의 예우를 갖췄다.

김일성 사망에 “전우이자 동지” 

1994년 7월 9일 정오 김일성 부고가 사망 34시간 뒤에 발표됐다. 중국은 한·중 수교로 얼어붙은 북·중 관계를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 당 공식 권력 서열 1·2·3위인 장쩌민(江澤民), 리펑(李棚), 차오스(喬石)가 연명으로 조전을 발표했다. 다음날 인민일보 1면에 게재했다. 591자. 공식 직함이 없던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별도의 조전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냈다. 역시 인민일보 1면에 게재했다.

“김일성 동지의 서거로 조선 인민이 위대한 영수를 잃었고, 나도 친밀한 전우이자 동지를 잃었다”고 했다. 318자. 평양에 조문 사절이 갔다는 기록은 없다. 이듬해 1월 리펑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한 장철 부총리를 만나 “중국 인민의 ‘위대한 친구’ 김일성 주석의 서거에 매우 비통했다”고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했다.

김정일 사망 땐 권력 1∼9위 전원 빈소 찾아

김정일 사망에 중국은 김일성보다 한 등급 낮은 ‘친밀한 친구’라며 애도했다. 김정일 부고는 사망 52시간 뒤인 2011년 12월 19일 발표됐다. 중국은 20일과 21일 베이징 북한 대사관에 마련된 빈소에 후진타오 주석을 위시해 권력서열 1위부터 9위 상무위원 전원이 두 팀으로 나눠 직접 조문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 당·정부·인민은 김정일 동지의 불행한 서거에 비통함을 깊이 느낀다”며 “김정일 동지는 조선 당과 국가의 위대한 영도자이자 중국 인민의 친밀한 친구”였다는 문구를 담은 조전을 보냈다. 493자.

지난 1953년 3월 이시오프 스탈린이 사망하자 중국 마오쩌둥 주석은 스탈린 영정을 베이징 천안문에 걸고 60만 명을 동원해 추모대회를 열었다. [위키피디아]

지난 1953년 3월 이시오프 스탈린이 사망하자 중국 마오쩌둥 주석은 스탈린 영정을 베이징 천안문에 걸고 60만 명을 동원해 추모대회를 열었다. [위키피디아]

중국 조문 외교의 최고 예우는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그가 사망했던 1953년 3월 중국은 천안문에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진을 떼고 스탈린의 영정을 걸었다. 마오쩌둥이 직접 베이징 소련 대사관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천안문 광장에 60만명을 동원해 성대한 추모대회를 열었다.

최고 지도자가 장례식 참석을 위해 직접 해외를 찾기도 했다. 1980년 당시 중공(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이자 국무원(정부) 총리를 겸직했던 화궈펑(華國鋒)이 직접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1892~1980)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요즘은 ‘중국 인민의 위대한 친구’, ‘중국 인민의 친밀한 친구’,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로 격을 나눈다. 지난 2012년 베이징에서 숨진 노로돔 시아누크(1922~2012) 캄보디아 태황, 2013년 숨진 우고 차베스(1954~2013)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위대한 친구’라는 호칭이 담긴 조전을 받고 최고 예우의 조문을 받았다.

시아누크 태황이 서거하고 베이징에서 열린 유체 고별의식(장례식의 중국식 명칭)에는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직접 참석했다. 당시 국가부주석이던 시진핑은 태후 노로돔 모니니엇 시아누크에게 별도의 애도와 위문을 보냈다.

탄자니아 지도자 조문은 인민일보 보도 

올해 들어 시진핑 주석이 해외 지도자 별세에 보낸 조전은 모두 다섯 차례 인민일보 1면에 게재됐다. 탄자니아 존 마구풀리 전 대통령(3월 23일), 영국 필립공(4월 10일),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 인토 대통령(4월 28일), 잠비아 케네스카운다 전 대통령(6월 23일), 포르투갈 조르즈 삼파이우 전 대통령(9월 12일) 서거에 각각 해당국 최고 지도자에게 조전을 보냈다.  마구풀리 전 탄자니아 대통령 별세엔 ‘좋은 친구(好朋友)’로도 호칭했다. 올해 중국의 조전 외교로만 본다면 중국은 한·중 관계보다 탄자니아, 잠비아 관계를 더 예우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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